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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한국의 거친 자각

입력
2016.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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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10일 오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맞서 남북 협력에 있어서 가장 최근의 중요한 결실이었던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개성공단에 체류하는 248명의 남측 인원에게 단 몇 시간 내에 개인 소지품을 챙기고 철수하도록 한 뒤 남측 자산을 모두 동결했다.

한국 국회의원 중 한 명이 그 후 곧바로 내게 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는 “한국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미가 완전히 분명해지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남한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고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란 점이다.

수년간 한국은 핵 협상이 결국 이득이 될 거라는 점을 북한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유지해왔다.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은 경제ㆍ에너지 원조, 미국과 평화 조약, 외교적 승인, 국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심지어 민간용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허락까지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어떤 논리로 봐도 북한에게 괜찮은 거래였고 조만간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은 끊임없이 합의를 거절했다. 북한과 협상하려는 시도가 헛수고로 끝난 건 서구의 많은 국가들, 특히 미국 우파에게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사는 사람들의 훈수가 어떤 역효과를 낳을지 국제정치 평론가들은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이 북한에 관해 스스로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1945년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인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련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한반도를 침략해(명백한 영토 침해) 일본군의 항복을 받았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북위 38도 이남에서 일본군 항복을 받아들이겠다고 성급하게 합의했다. 그렇게 북위 38도를 따라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이산가족이 생겼고 오래되고 활기찬 문명에 균열이 생겼다. 한반도 분단은 다른 많은 20세기의 비극이 끝난 뒤에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개성공단은 상징적으로 특별한 반향을 지녀왔다. 오래된 도시인 개성은 비무장지대(DMZ) 서쪽의 얕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2,000년이 넘는 한국 역사에서 개성은 전통적으로 군대가 남쪽이나 북쪽으로 침략하려 할 때 지나가는 경로에 위치해 있다. 한반도가 처음 분단됐을 때 개성은 한국의 최북단 도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동안 북한군과 중국군의 지배를 받게 됐고 휴전 이후 북한의 최남단 도시가 됐다.

산업 지구를 만들자는 2002년 합의는 두 나라가 다시 합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줬다. 개성은 가파르게 오르는 임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들이 저임금의 북한 노동력을 쓸 수 있도록 하며 생명줄을 제공했다. 북한 사람들에게 한국 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 데 있어 첫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였다.

남측이 험악한 인상의 북측 교섭단에게 양보를 구했던 ‘남북회담’에 대한 해외의 비판을 한국인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외국 비평가들이 분단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유화론자라거나 개성에 관해 비이성적으로 낙관적이라는 해외의 비난에 대해 분노하며 무시했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박 대통령의 결정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닌 이유가 여기 있다. 박 대통령의 결정은 남측이 더 이상 북측의 잔인하고 칼리굴라 같은 지도자와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이 북측과의 협력을 전반에 걸쳐 중지했으니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나라들에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한반도의 전략적 계산법을 극적으로 바꾸고 있다. 남측이 호전적 이웃에 대해 방어적 입장을 취하게 됐고 그로 인해 미국의 첨단 방어 미사일 포대가 배치될 가능성이 열렸다. 한때 금기시됐던 선택권들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북한이 또 다른 다단식 로켓을 가동하기 시작한다면 남한은 자기방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겨냥할 것인가. 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이 북한 항구에서 출항한다면 박 대통령은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자신들의 새로운 전략적 상황에 대해 심사숙고해야만, 국제적 지지를 받게 될 거라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세프 코벨 국제대 학장ㆍ국무부 전 차관보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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