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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자청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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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자청했더라면

입력
2017.07.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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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죄 성립 여부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가해질 도덕적 타격뿐 아니라 형량도 직권남용ㆍ강요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하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탄핵 사유에 들어있진 않았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삼성 뇌물 수사가 한창이었던 만큼 대통령 탄핵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뇌물 혐의가 법원에서 배척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렵다.

다음달 선고를 앞둔 삼성 뇌물사건 재판에서 최근 연출되는 낯선 풍경은 뇌물과 관련해 한 묶음으로 엮인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인 최순실씨, 삼성 연합군과 특검과 검찰 모두 한층 몸이 달아올랐다는 방증이다. “삼성도 말 세탁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유라씨의 태도 변화와 이를 둘러싼 특검과 변호인의 ‘보쌈 증언’ 공방, “부담은 크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 법정에 섰다”는 경제 검찰 수장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삼성 재판 증언과 이에 “특검에 경영권 승계 프레임을 제공한 장본인으로, 승계 프레임은 김 위원장의 권고와 의견”이라는 삼성 측 변호인의 비판과 방어 등 보기 드문 상황은 삼성 재판의 치열함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뇌물 관련 범행 동기 증명은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다.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련의 작업 과정이며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나 박 전 대통령 공소장은 이런 논리 구조로 이뤄져 있지만 얼개의 근거가 나와 있지 않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전 준비된 청와대 말씀자료에 경영권 승계 언급이 있지만 이를 작성한 청와대 행정관은 인터넷과 언론보도를 참고했다는 식의 진술이라 확실한 근거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범행 동기로서의 ‘경영권 승계’ 시비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경영권승계 작업)을 주도했다는 미래전략실’ 등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특검이 필요한 근거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블랙리스트 이화여대 학사비리 비선의료 등 국정농단 사건의 다른 가지들과 비교해 삼성 재판의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것은 ‘증거재판주의’에 있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범죄 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307조)에 비춰 지금 벌어지는 낯선 법정 풍경도 이해가 가능하다. 완벽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증거와 증언을 놓고 판사의 심증을 얻기 위한 공수 양측의 사활을 건 싸움이 빚은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진흙탕에 지난 주말 청와대가 발을 담갔다.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300건의 문건 발견 사실을 발표하면서 국정농단과 관련된 일부 문건 내용들을 공개했다. 특히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메모에서 ‘삼성경영권 승계국면→기회로 활용’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다. 특검 논리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단서라는 말도 있고, 기존 증거와 다를 게 없다는 폄하 섞인 이야기가 혼재돼 나온다. 문건 내용의 폭발성 여부와 별개로 대통령 기록물법 위반이나, 증거능력 문제, 정치적 의도 시비가 부각되고 있어 청와대 개입에 따른 국정농단 사건의 정치적 오염 또한 피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시절 외교 안보 사안에 대한 상대당의 문건 폭로로 적잖은 곤욕을 치렀던 이 정부가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정치적 오염을 피하고, 법률적 문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청와대가 사상 최초로 ‘털리는’ 일을 겪더라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자청했더라면 시비도 덜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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