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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용 없는 성장

입력
2017.04.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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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란 국내총생산(GDP)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제조업에서 상품 생산을 늘리려면 그에 비례해 설비와 노동력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공장 자동화의 진전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의 해외 이전 등에 따라 생산은 늘어도 국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기업은 인건비 추가 부담 없이 생산을 늘림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반면 사회적으로 실업이 늘고 대부분 근로자 가계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 고용 없는 성장이 새로운 얘긴 아니다. 18세기 중반에 등장한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는 영국 면사 생산량을 300~400배로 폭증시켰다. 그 결과 전통적 방식의 면사 생산에 종사했던 수많은 노동자가 실직하게 됐고, 급기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방적기계를 때려 부순 러다이트운동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산업혁명 자체가 끊임없는 생산설비의 진화로 인간 노동의 영역이 지속적으로 위축돼 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더 극단적 인간 노동의 소외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사회운동가 제레미 리프킨 같은 사람은 1994년 “우리는 지금 (세계화와 생산자동화에 의해)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자신의 저서 제목에 ‘노동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썼다. 최근 글로벌 자산관리사 UBS는 아시아에서 인공지능(AI)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효과는 2030년까지 3조달러(3,400조원)에 이르지만, 대신 5,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기도 했다.

▦ 고용 없는 성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본격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반도체 유화 등 수출이 크게 늘면서 한은 등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고, 깜짝 실적을 거둔 대기업도 속출했다. 하지만 18일 경총에 따르면 100인 이상 기업 258사의 올해 신규 인력 채용 규모는 작년보다 6.6%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다. 10대 그룹 상장사 87곳의 임직원은 2015년 64만4,248명에서 지난해 말 62만9,517명으로 오히려 크게 줄었다. 대선 후보들은 일자리 창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더 이상 고루한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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