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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수행기자 폭행, 중국 책임 끝까지 물어야

입력
2017.12.19 20: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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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기간 대통령 팔을 툭툭 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악수법을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의도성, 고의성 등에 비춰 심각하게 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낮춰 볼 지위도 아니고, 공식 환영식 분위기에 비춰 의도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왕이 부장이 과거 정부 시절부터 우리에게 보인 말과 행동이 결례 논란을 증폭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

양국 갈등의 핵이 된 사드 배치 이후 왕이 부장의 말과 행동은 여러 차례 시비거리가 됐다. 경극배우 뺨치는 능력을 보여온 왕이 부장의 말과 행동은 바로 상대국과 현안에 대한 중국 정부 분위기나 태도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의 도발적 언행은 ‘신정부 간보기’라도 하듯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그치지 않는다. 국가 이익 침해를 강조하는 사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러하겠지만 세련된 항의나 반대의사 표시와, 무례한 행동으로 말하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4개월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보인 왕이 부장 행동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거칠었다. 당시 한중 외교장관회담 주최측인 왕이 부장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맞는 장면으로, 회담에 앞선 포토타임 자리에서다. 걸어 들어오던 강 장관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악수하게 된 상황에서 왕이 부장은 강 장관이 내민 손을 잡아 끌었다. 이 바람에 강 장관은 끌리듯 두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짐작하건대 두 외교장관 뒤편으로 각각 한중 국기가 있었고, 왕이 부장은 오성홍기 바로 앞쪽에 서 있었던 반면 걸어 들어왔던 강 장관은 태극기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자리해 ‘정 위치’를 잡아준 걸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힘을 과시한’ 왕이 부장의 악수법은 매우 부적절하다. 손을 내밀어 정 위치로 안내하든가, 구도가 조금 맞지 않더라도 왕이 부장이 자리를 옮기는 게 아무리 적대적이라도 예를 잃지 않는 외교관의 자세라 할 것이다. 그 후 회담에서의 그의 격정적 발언은 무례한 행동을 짐작하고도 남을만하다. 회담이 있기 얼마 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했으니, 왕이 부장은 회담장에서 열변을 토하듯이 한국 정부 결정을 성토했다.

참여정부 시절 고위급 외교관은 사석에서 미국과 중국을 두고 각각 ‘기분 나쁜 상대’와 ‘치명적인 상대’로 평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아마도 거침없는 패권적 기질과 지정학적 역학 구도를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숱한 주변국에 대응하면서 역사적으로 뿌리내린 중국의 패권적 자세나 의식은 본능에 가까운 DNA라 할 수 있고, 곧잘 행동으로 표출돼 주변국의 거부감을 산다.

모든 예를 다하고, 의전의 정수를 보여줘야 이번 국빈 방문의 형식과 성격상 그 어떤 홀대나 결례 논란보다도 중국 공안 당국이 경호ㆍ보안을 총괄한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취재 비표를 들고 정당한 활동을 한 대통령 수행 사진기자에 대한 중국 측 경호업체 인력의 집단폭행은 무례 중의 무례다. 소국 대하듯 하는 패권적 자세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드의 뒤끝이 작열하지 않은 이상 벌어질 수 없는 반문명적 사건이다. 국빈 방문 성과를 퇴색시킨 폭력사태에 열 두 번의 사과와 유감을 표해도 시원치 않을 중국 외교부가 “한국 측에서 주최한 자체 행사”를 운운한 태도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권적 기질과 힘의 과시와 달리 중국의 실용주의는 오히려 물밑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계산과 돈에 밝은 중국이 애초 사회주의를 택한 게 세계사의 아이러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중국의 실용주의 또한 뿌리깊은 DNA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실용주의를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 국빈방문 행사 중의 벌어진 무례의 극치를 끝까지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 일행에 대한 폭력 행사이며 나라 체통에 관한 문제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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