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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슈퍼 군의 독식… '창작의 영혼'마저 집어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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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슈퍼 군의 독식… '창작의 영혼'마저 집어삼키다

입력
2013.05.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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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공들인 연극·뮤지컬 대본 "맘에 안 든다" 계약 돌연 철회 일쑤웹툰작가엔 '2차판권 포기' 강요… 음악의 가치는 '몇 십원' 전락도"작가로서의 자존심 땅바닥에…" 공정거래 위한 현실적 수단 절실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 '온에어2'의 대본을 쓴 박새봄(40) 씨는 스스로를 극텍스트 노동자라 칭한다. 그는 자신이 "원고를 팔아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런 면에서 예술인이기 이전에 노동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좋아서 하는 예술이니 대가(돈)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세상의 인식을 비판했다.

"연극 뮤지컬 계는 작가들의 무덤입니다. 대본 한 편 쓰는데 최소 1년이 걸립니다. 제작사들은 일단 쓰라고 하고 나중에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모두 창작자 탓으로 돌리고 계약을 안 해요. 돈과 시간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자존감까지 모두 말라 버립니다."

그도 그렇게 많이 당했다는 박씨는 "요즘은 시놉시스(개요)만 보여준 뒤 계약하고, 선금을 받은 뒤 대본을 쓴다"고 "하지만 젊은 작가들은 여전히 제작자에게 끌려 다니며 소모된다"고 말했다.

공연계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예술인활동여건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10개 분야 2,000명의 응답자 가운데 월 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가 66.5%로 2009년 62.8%에 비해 더욱 악화됐다. 월 수입이 아예 없다고 답한 예술가도 26.2%였다.

반면 문화예술 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2011년 한국문화관광원의 '국내뮤지컬산업현황'에 따르면 뮤지컬은 2011년까지 5년간 연평균 15% 정도의 성장을 기록했다. 2008년 2,000억원이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3,000억원을 돌파했다. 음악시장 규모도 2011년 4,199억원에서 2010년 5,917억원으로 커졌다(한국음악저작권협회).영화 매출액은 2009년 9,000억원에서 2012년 1조 1,000억원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9편의 영화 중 8편이 한국영화다. 한 마디로 성장의 과실이 정당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황승흠 국민대 법대 교수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법으로, 자영업자는 사업자 등록을 통한 관련 법률로 부족하게나마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개별 계약관계를 맺는 프리랜서 개념인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법과 제도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예술산업은 제작사나, 유통사(배급사) 등 슈퍼 갑들에게 권력이 쏠려 있는 승자 독식 구조"라며 "슈퍼 갑들의 성장이 창작자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에서 290만건의 다운로드로 28억 원의 음원 수익을 기록했다.반면 한국에서 거둔 수익은 약 360만 건의 다운로드에 6,600만원에 불과했다. 미국은 건당 평균 965원, 한국은 건당 18원이다.

미국의 대표적 음원사이트인 아이튠스의 경우 최신곡 한 곡 값은 1.29(약 1,400원)달러다. 한국은 600원. 하지만 대다수 음원사이트의 '정액제' 탓에 저 가격에 음원을 구입하는 이는 드물다. 네이버뮤직이 판매하는 30곡 정액제 가격은 4,900원으로 곡당 160원이다. 월 4,900원으로 모든 음악을 무제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정액제도 있다.

소비자의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고 유료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시작된 음원 덤핑 판매로 시장은 일정 정도 양성화했지만, 작곡가나 가수 등 음악 창작자의 몫은 오히려 줄었다. 정문식 뮤지션유니온 위원장은 "10년 전 CD 한 장 값이 만원으로 곡당 1,000원 꼴이었지만 지금은 곡당 600원이고, 그나마도 유통마진 등을 제외하면 가수 몫은 몇십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은 상품을 평가하는 척도다. 음악인이 얼마를 벌고 못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에 매기는 가치가 몇십원이라는 현실에 음악인들은 좌절한다"고 말했다.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 원작으로 최근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서 공모전 등을 통해 '돈 될 만한'웹툰 선점전이 활발하다. 한 업체는 최근 '당선작 판권계약시 저작권에 대한 우선권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웹툰 공모전을 벌여 만화가들의 원성을 샀다. 작가들이 얼마 안 되는 원고료를 받으면서도 응하는 이유가 2차 판권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그마저 챙기겠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한국만화연합 관계자는 "주간 연재 회당 고료 30만원이면 월 120만원이다. 그 돈으로 보조자 임금 지급하고 각종 자재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그 판에 2차 저작권까지 빼앗는다면 아예 만화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부당한 처우를 감내해야 하는 게 지금 만화 작가들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뮤지컬 '코요테 어글리'의 출연자 15명이 제작사를 상대로 미지급출연료지불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소송이 공연 예술계 전반의 주목을 끈 까닭은 뮤지컬 배우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2011년 8월 조직된 뮤지컬협회 배우분과가 소송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계창 뮤지컬협회 배우분과 위원장은 "뮤지컬 경력 5년차 배우의 2년간 수입이 74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다. 앞으로는 배우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공개적으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임금 체불. 불안정한 고용 관계 등 문화예술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본질은 문화예술인들이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황승흠 교수는 "외국의 경우 문화예술인들이 제작사와의 거래에서 참고할 '표준 계약서'가 보편화 됐거나, 부문별 문화예술인 조합이 있어 공정한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며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나 조합이 없어 문화예술인들의 권익을 보호할 현실적인 수단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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