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명 관객에 안전요원 4, 5명뿐
그나마 무대 주변만 지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이번에는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환풍구 덮개에 관람객 40여명이 올라갔다가 덮개가 붕괴됐다. 환풍구 아래는 지하 4층 주차장이어서 약 20m 아래로 추락한 이들 대부분 사망과 중상으로 피해가 컸다. 윤모(35)씨 등 16명이 숨지고 11명이 크게 다쳤다. 환풍구 덮개는 하중을 크게 감당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는데도 올라가는 이들을 제지하는 공연 주최측 요원은 없었으며 미리 펜스를 설치해두는 안전대책도 없었다.
17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관람객 27명을 집어삼킨 환풍구는 공연 무대에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상에서 1m 정도 높이 돋아 있는 환풍구는 공연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여서 40여명의 관람객이 올라선 채 빼곡히 몰려 있었다. 이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덮개가 무너지면서 관람객 27명이 순식간에 지하로 사라졌고, 한참 뒤 먼지가 솟아올랐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소방당국은 지하 4층 주차장 환풍구를 통해 구조 활동을 펼쳐 사고 발생 70여분 뒤인 오후 7시35쯤 구조를 완료했다. 소방 관계자는 “환풍구의 덮개로부터 깊이 1m, 10m 지점에 각각 약간 돌출된 턱이 있어 환풍구 외곽쪽에 있다가 추락한 사람들이 턱에 걸려 부상이 상대적으로 덜했다”며 “하지만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 수 있다”고 말했다.
환풍구 아래 깊이는 약 20m에 달했지만 바둑판 모양의 철제망 8개가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일반적인 건물 옥상의 환풍구는 관리요원만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물쇠장치 등이 설치돼 있지만 이번 사고가 일어난 1층 광장 환풍구에는 이러한 장치가 없었다. 관람객들이 환풍구에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접근을 차단하는 대책도 전혀 없었다.
공연기획사의 안전불감증은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를 주관한 이데일리사는 안전과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현장에 40여명이 배치됐다고 밝혔지만 이들 대부분은 공연 스태프들로 안전요원은 4~5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요원들은 무대 주변만을 지키고 있었다.
사고 당시를 목격한 천모(35)씨는 “환풍구 주변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서 현장에 다가갔을 때 안전요원이 아닌 행사 진행 스태프 2~3명만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당시 환풍구 덮개에 40여명이 올라갔지만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사회자가 당시 환풍구쪽을 지목하며 안전에 주의해달라는 말을 했지만 행사 스태프 누구도 직접 와서 내려 오도록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인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환풍구 덮개는 애초에 사람이 올라가지 않는 시설이어서 큰 하중을 버티도록 설계하지 않지만, 다중이 몰리는 공연장에서 전혀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환풍구 덮개가 얼만큼의 하중을 버틸 수 있느냐를 따지기 앞서 환풍구 덮개 위에 그 많은 사람이 올라가도록 놔뒀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주최 측에서 안전관리 조처를 제대로 했는지, 사전에 진행요원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진행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오후 10시 서울청사에서 안전관계 장관 및 관계자 회의를 긴급히 개최하고 사고수습 대책을 논의했다. 경기도와 성남시는 사고 수습을 위해 분당구청에 상황실을 꾸렸고 경기경찰청도 허경렬 2부장(경무관)과 수사관 72명으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성남=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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