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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전정우씨 “앞으론 쓰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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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전정우씨 “앞으론 쓰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야”

입력
2017.10.21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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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우 심은미술관 관장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래의 서예는 보는 서예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우 심은미술관 관장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래의 서예는 보는 서예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120가지 서체로 720종 천자문 써

“선 몇개의 추상서 내놓는게 목표”

“과거 서예(書藝)는 쓰는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보는 서예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제미술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선(線) 몇 개로 완성한 추상서(書) 작품을 내놓는 게 남은 목표입니다.”

고희를 앞뒀지만 ‘서(書)’에 대해 얘기하는 서예가 심은(沁隱) 전정우(69) 심은미술관 관장의 눈과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24일부터 일주일간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유예자여(遊藝自如)전’을 앞두고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전 관장은 “미래의 서(書)는 보는 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나 서화(書畵) 작품들은 많지만 국제미술시장에서 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추상서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이유인데, 대중을 쫓거나 작품을 팔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밝힌 전 관장은 120가지 서체로 720종의 천자문을 쓴 서예가다. 서예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6가지 서체로 쓴 것이 최다라고 한다. 그가 천자문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세번째 개인전 이후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됐다고 생각했다. 당시 작품을 보면 서양화에 사용하는 캔버스에 글자를 쓴 것도 있고, 글자를 조형물로 만든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천자문을 응용해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천자문은 1구에 4자씩 모두 250구로 된 고시로 옛날에는 황제나 왕의 명을 받은 사람들만이 썼다고 한다.

전 관장은 우선 한자 5체(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로 천자문을 썼다. 5체를 쓰는데 걸린 시간은 세달. 5체를 끝내고 이번에는 그 동안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썼던 서체로 하나하나 써나갔다. 중국의 갑골문, 금문, 죽간체는 물론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백제 무령왕릉지석에 새겨진 문자, 한석봉과 김정희, 최치원, 왕희지, 구양순 등 당대 최고 문인들의 서체들이다. 비에 새겨진 글자는 20~30자에 불과한 경우도 많아 글자를 익혀 응용해 나머지 글자를 채웠고 글자가 만들어진 시대도 공부했다.

서체를 익히기 위해 펜으로 쓴 초고 천자문과 붓으로 글자 크기를 1㎝부터 16㎝까지 달리해 쓴 5종의 천자문까지 서체마다 6종씩 모두 720종의 천자문을 완성한 것은 10년이 지난 2013년 1월이었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자신만의 서체였다. ‘법고창신(法古創新ㆍ옛 것을 본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이었다. 한글자를 여러 서체로 표현한 전 관장의 서체에 평론가들은 ‘심은혼융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개인전에서 천자문과 심은혼융체, 추상서, 도자기 등 2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 관장은 “글자를 쓰면 심성이 맑아지고 조급한 성격이 없어진다. 붓이 가는 순간 숨을 멈추고 맺을 때 코로 숨을 쉬어 저절로 복식호흡이 되고 집중력도 생겨 감기나 치매도 없다”며 “고향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라 감회가 남다른데 앞으로도 공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전 관장은 경기공고 공예과,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1978년 7월 서예 대가 여초 고(故) 김응현 선생으로부터 7개월간 사사를 받았다. 한국화재보험협회,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11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글씨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지고 1986년부터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걸었다. 2000년 9월부터 문을 닫은 강화 강후초등학교를 자신의 호를 딴 심은미술관으로 꾸민 뒤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지금까지 2,000여명의 제자들을 배출했고 해마다 1,000점 이상의 작품을 내놓고 있다.

글ㆍ사진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심은혼융체 작품. 심은 전정우 선생 제공
심은혼융체 작품. 심은 전정우 선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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