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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도 野도 못 푸는 세월호 정국, 중재할 제3세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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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도 野도 못 푸는 세월호 정국, 중재할 제3세력이 없다

입력
2014.09.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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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충지대 없는 벼랑 끝 대치 상황 "종교계·시민단체 중재 필요" 목소리

뉴라이트 등장 후 시민사회 보혁 양분… 양 진영서 권위 인정하는 원로 없어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이 차단용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회가 마비된 상황을 웅변하는 듯하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이 차단용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회가 마비된 상황을 웅변하는 듯하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여야의 정치력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제도권 바깥에서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지만, 도덕적ㆍ정치적 권위를 가진 제3세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87년 개헌 이후 정치권의 극한 대치 고비에서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치의 공백을 메웠다면 지금은 완충지대마저 사라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해법을 마련하는 데 있어선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차제에 시민사회세력도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복원하기 위해 재구성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위를 가진 ‘중재자’가 ?없다

지난달 19일 여야 원내대표간 세월호특별법 잠정 재합의안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의해 거부된 뒤 정치권 일각에선 시민사회세력의 중재 필요성이 거론됐다. 주로 야당 측에서 나온 얘기인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명망가들이 한 목소리로 여야ㆍ유가족의 3자 협의체 구성을 촉구할 경우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직간접적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쪽으로 유연성을 보일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정치권 안팎에선 함세웅 신부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인명진 목사 등의 이름이 거론됐고, 이들이 공동 명의로 발표할 문안이 성안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시민사회세력 대신 새정치민주연합이 유가족의 3자 협의체 구성 요구를 수용해 새누리당에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정치 실종 상황에서 역할을 기대했던 시민사회는 왜 기대를 저버린 것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도덕적ㆍ정치적 권위를 가진 시민사회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참여정부 후반 뉴라이트그룹이 등장하면서 시민사회진영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게 됐고 이에 따라 정치적ㆍ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세력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종교계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거나 존경 받는 사회 원로가 없는 상황에 대한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종교계 내부적으로 사회적 갈등에 적극 개입했다가는 순수성을 의심받을 거라는 우려가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기 교수는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상당수 사회 원로들이 특정후보 지지를 표명한 뒤 진보와 보수 양측으로부터 모두 권위를 갖는 원로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고,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집권여당이 현직 국회의장의 중재를 거부한 사례가 사회 원로들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갈등의 완충지대는 어디로 갔나

시민사회의 존재와 기능은 좌우의 시민사회 세력이 18대와 19대 총선을 거치면서 대거 제도 정치권으로 흡수되면서 실종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로써 건강한 시민사회 공동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풀뿌리 조직의 근간 자체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시민사회단체들이 섣부른 정치권력화로 순수성을 잃으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민사회 세력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세월호 정국에서는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복지 문제라면 가치관 논쟁이 크게 일어날 수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당위적인 규범 문제여서 정부와 여야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라 시민사회진영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넓지 않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의 해법을 이념적 대결 구도로 만들어 완충지대의 여지를 없앤 대목도 지적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원래 진보나 보수적 시각이 다를 수 없는 사안임에도 이미 정치권의 논쟁을 거치면서 이념적 갈등 사안이 돼버렸고, 이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에서 중재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때문에 시민단체가 이념적 편향성을 버리고 ‘사회적 평형수’의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율 교수는 “시민단체가 이념을 초월해 사회 다원화 추세에 걸맞게 개개인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며 “집단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보다 강한 이념 성향을 띠는 현재 구도를 탈피해야 함은 물론이다”고 강조했다.

“결국은 朴대통령이 결단할 문제”

이처럼 ‘세월호 정국’은 여야 정치권이 이미 갈등의 당사자이면서 양측 모두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데다, 국민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이를 중재할 제3세력도 부재한 상황이어서 정치국회 파행 사태는 자칫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공산이 커 보인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 사태의 유일무이한 해결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꼽았다. 양승함 교수는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건데 박 대통령이 최근 세월호 문제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외면하면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자초하는 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박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해야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준한 교수는 2005년 사학법 개정 파동 때 노무현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여당의 양보를 촉구한 일 등을 거론하며 “지금 나서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박 대통령 딱 한 사람 뿐”이라고 강조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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