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저유가’추세에 결국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두 손을 들었다. 1ℓ 당 100원 안팎의 싼값으로 휘발유를 공급하며 엄격한 통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오던 사우디 왕실이 저유가로 재정난이 심화되자 연료 보조금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휘발유 값이 최대 67%까지 올라가게 됐다.
사우디는 그 동안 미국 중심의 세일가스 등에 맞서 원유시장의 영향력을 지탱하기 위해 무리하게 감산 반대를 고집해 왔지만 결국 휘발유 소비자가격 인상을 비롯 긴축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외신들은 국제원유가가 내년 상반기 배럴 당 20달러 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앞다퉈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사우디 정부는 28일 국왕 주재 내각회의에서 저유가로 인해 내년 세입이 크게 줄어 약 870억달러의 재정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어 사우디 정부는 재정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29일부터 전격적으로 고급 무연휘발유의 국내 소비자가격을 현재 ℓ당 16센트에서 24센트로 50% 인상하고, 일반 휘발유는 12센트에서 20센트로 67% 올려 국가의 연료 보조금을 대폭 절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상 전 휘발유 사재기를 막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인상안 발표 직후 29일 자정까지 전국 주유소들에 판매중단을 지시했다.
사우디의 올해 재정적자는 건국 83년 이래 최대인 980억달러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본격화된 저유가로 매달 53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면서 재정적자 구멍을 메워왔던 사우디는 내년 적자도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예상됨에 따라 12월 초 2019년부터 부가가치세 도입을 공식화한 데 이어 ‘마지막 카드’인 휘발유 소비자 가격까지 대폭 인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1971년 이후 사우디에서 에너지 가격이 인상된 것은 모두 아홉 차례에 불과하다.
사우디의 자구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우디 재무부에 따르면 각종 국영 시설의 민영화를 포함한 경제개혁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재무부 관리를 인용해 “부유층에 우선한 전기요금 인상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상수도세 인상, 그리고 산업용 에너지 가격 조정 등이 시행될 것이다”라며 “중산층 이하 국민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약 5년 간에 걸쳐 천천히 각종 정책을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휘발유 값 인상을 포함한 여러 대책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리더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방행정을 제외하곤 모든 정치를 왕실이 손에 쥐고 있는 중앙집권체제 사우디에게 지나친 긴축은 곧 국민의 불만이 왕실에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FT는 “휘발유 값 인상 등 경제개혁들이 실패할 경우 왕은 물론 재무정책을 총괄하는 왕세자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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