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가 지난해 내분사태를 겪은 후 올 초부터 본격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다. 가장 큰 조직이 양분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이젠 총기까지 등장하는 수위로 충돌이 심각해졌다. 일본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자 결국 경찰당국이 이들의 충돌을 인정하고 공식 대응에 나섰다. 자칫 조직간 충돌이 경찰과 폭력조직의 싸움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일본 경찰청은 7일 야마구치구미와 고베 야마구치구미 사이의 갈등을 ‘항쟁’(抗?ㆍ조직간 전쟁) 상태로 공식 규정하고 각 지역 경찰본부에 집중단속본부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8일에는 도쿄 도내에서 전국 폭력단대책 담당경찰 긴급회의를 열고 시민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을 결의했다.
야마구치 분열사태는 작년 산하 조직두목 13명을 ‘절연(絶緣)’ 또는 ‘파문(破門)’ 형식으로 조직에서 배제하면서 비롯됐다. 야마구치구미의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가 출신 파벌인 고도카이(弘道會)에 편파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고액의 상납금으로 갈등이 쌓이면서다.
폭력조직 내부규율에 따라 파문되면 다른 조직에도 통지돼 야쿠자사회에서 상대하지 않는 존재가 되며 절연 조치에는 무서운 보복이 뒤따라 일반사회에서 부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이들이 야마구치구미파의 발상지 이름을 따 고베(神戶)야마구치구미라는 새 조직을 만들었고 구성원 수로 각각 1위와 3위에 해당하는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간 알력은 당국의 단속에 한동안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던 게 지난달 도쿄 도심 한복판 충돌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넘치는 신주쿠(新宿) 최대유흥가인 가부키초(歌舞伎町)에서 고베측 조직원들이 집단으로 야마구치 조직원을 폭행하는 장면이 대중에게 노출된 것이다.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20개 지자체에서 49건의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했다. 피해상황은 양측이 거의 비슷해 물리력이 팽팽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트럭을 이용해 상대방 사무소나 주택에 무작정 돌진하는 사건이 수차례 있었고,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난달 27일에는 사이타마(埼玉)현의 고베야마구치구미 간부의 자택 벽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3시간 뒤 도쿄에선 고베야마구치구미 측 조직원이 3인조로부터 최루분무액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연쇄보복은 끊이지 않아 이틀 뒤 도야마(富山)현 야마구치구미 사무실에 화염병이 투척돼 고베 측 간부가 체포되는 일이 이어졌다.
경찰 당국은 이들의 ‘전쟁’이 시작단계라는데 긴장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 국가공안위원장은 지난 4일 “대립항쟁 사건이다.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철저히 억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틀 뒤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시의 고베야마구치구미 사무실에 총탄 5발이 날아들었다. 문제는 이곳이 초등학생들의 통학로가 인접한 곳이어서 주민불안이 커졌다는 점이다. 현재 초등학교 주변엔 경찰관과 교직원, 자원봉사자가 총출동해 학생들의 등하굣길을 지키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동네 분위기가 폭력조직간 싸움으로 흉흉해진 상황이다.
경찰이 우려하는 이유는 ‘야마이치(山一)항쟁’으로 불리는 1984년의 기억 때문이다. 다케나카 마사히사(竹中正久)가 야마구치구미 4대 두목을 승계받는 과정에서 야쿠자 25명이 숨지고 시민ㆍ경찰관 70명이 다치는 참상이 벌어졌다. 일본에선 상대조직 사무실 앞에서 3명만 모여있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막무가내 자존심 대결에 들어간 야쿠자들의 근성을 당국이 얼마나 막아낼지 우려된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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