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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소설가, 만화가.. 하나로 존재할 수 없었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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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소설가, 만화가.. 하나로 존재할 수 없었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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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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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의 작업실에서 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토베 얀손. 무민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뛰어난 화가이자 삽화가, 소설가였다. 작가정신 제공
핀란드 헬싱키의 작업실에서 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토베 얀손. 무민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뛰어난 화가이자 삽화가, 소설가였다. 작가정신 제공

둥글둥글 귀여운 것들은 늘 사랑 받게 마련이지만 그 사랑의 폭이 넓어지려면 귀여움의 이면이 필요하다. 스누피에겐 다정한 냉소, 텔레토비에겐 유아스런 광기가 있었다면, 무민에겐 무엇이 있었을까. 종말적 평화로움 같은 것?

무민 캐릭터를 탄생시킨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1914~2001년)의 삶을 그린 책 ‘토베 얀손 – 창작과 삶에 대한 욕망’(작가정신)이 출간됐다. 다음달 2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무민 원화전에 맞춰 나왔다. 얀손을 유명하게 한 무민 시리즈 외에도 회화, 벽화, 삽화 등 다양한 장르의 대표작 70여점을 소개한다. 핀란드 예술사가 뚤라 까르야라이넨, 영국 기자이자 만화 평론가 폴 그래빗, 얀손 평전을 쓴 스웨덴 문학교수 보엘 웨스틴, 영국 소설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등 ‘얀손 전문가’ 4인이 각자가 본 얀손의 삶과 예술 세계에 대해 썼다.

“사람은 하나로 존재하기보다 언제나 새로운 형체를 추구하는 다수로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더 다수일 수 있다. 토베 얀손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까르야라이넨에 따르면 얀손은 만화가의 정체성 하나만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얀손은 열네 살 때 처음 잡지에 코믹 스트립(컷 만화)을 게재하며 고료를 받았다. 대학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인상파의 색채를 동경했고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를 특히 사랑했다.

왼쪽이 1945년에 그린 무민(무민 가족과 대홍수), 오른쪽이 1965년의 무민(무민 파파와 바다)이다. 시간이 갈수록 현재의 모습에 가깝게 둥글둥글해지고 있다. 작가정신 제공
왼쪽이 1945년에 그린 무민(무민 가족과 대홍수), 오른쪽이 1965년의 무민(무민 파파와 바다)이다. 시간이 갈수록 현재의 모습에 가깝게 둥글둥글해지고 있다. 작가정신 제공

회화 작품에 매진하던 20대 중반 무렵 2차대전이 발발했고, 이는 얀손의 삶에 또 다른 길을 만든다. 그는 핀란드의 진보 정치잡지 ‘가름’에 표지와 삽화를 그리며 히틀러와 스탈린을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당시 얀손의 그림 속에서 히틀러는 칭얼대는 어린 애로, 스탈린은 긴 칼집에서 짤막한 칼을 뽑아 드는 허풍쟁이로 희화화됐다. 무민 캐릭터가 나온 시기도 이 무렵이다. 당시 손꼽히게 공격적인 만평을 그리던 얀손은 다른 작품에선 일체 전쟁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는데, 전쟁의 공포와 우울을 떨쳐내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1945년 첫 무민 시리즈 ‘무민 가족과 대홍수’가 출간된 이래 1954~1959년 런던 신문 ‘이브닝 뉴스’에 무민 만화를 연재하기까지, 무민의 인기는 점점 더 올라가 얀손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놨다. 그러나 동화작가이자 만화가로서의 지나친 성공은 얀손의 예술가로서의 삶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그가 만화가라는 이유로 핀란드 미술계는 얀손의 회화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얀손은 만화 연재를 그만둔 뒤 치열하게 회화 작업에 매진했으나 미술계의 눈에 그는 “상업적 이익에 눈이 멀어 자신을 팔아 넘긴” 예술가일 뿐이었다.

60대에 들어선 얀손은 무민도, 회화 작업도 그만둔 채 소설 쓰기에 몰두해 2001년 작고할 때까지 다섯 편의 소설과 다수의 단편 소설집을 남긴다.

공포, 불안, 평화, 유머. 무민의 복잡다단한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복잡한 예술가의 다단한 작품세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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