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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에 불 질러… 보험금 67억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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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에 불 질러… 보험금 67억 ‘꿀꺽’

입력
2018.08.08 16:44
수정
2018.08.08 23:5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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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해역 조업 3년째 적자

선박 유지비도 못 건지자 ‘작전’

고향 후배,손해사정사 등과 짜고

방화 뒤 ‘원인 모를 화재’로 둔갑

제보자 공익신고로 덜미 잡혀

첫 선박 방화 사기 일당 구속

2016년 11월 2일 오전 불에 탄 4,000톤급 원양어선. 선박을 소유한 업체 대표 A씨는 부진한 조업에 적자가 쌓이자 선박을 불태워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실행해 보험금 67억원을 타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2016년 11월 2일 오전 불에 탄 4,000톤급 원양어선. 선박을 소유한 업체 대표 A씨는 부진한 조업에 적자가 쌓이자 선박을 불태워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실행해 보험금 67억원을 타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선박 10여척을 보유한 중견 원양업체 대표 A(78)씨는 2013년 6월 40년 된 4,000톤급 원양어선 한 척을 180만달러(약 20억원)에 사들였다. 조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투자였다. 선박 국적도 바누아투공화국으로 등록해 남아프키라공화국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려 했다.

남아공 해역 조업은 A씨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박 유지비도 건지지 못한 채 연간 적자가 6억원에 달했다. 3년째 적자가 쌓이자 고기잡이로는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겠다는 생각에 빠진 A씨는 급기야 ‘나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선박에 불을 지르고 사고로 둔갑시켜 보험금을 타내기로 결심한 것. 보험금으로 냉동공장 설립 후 공동 운영 또는 성공사례비로 보험금 10% 약속을 내걸어 계열사 전 대표 김모(72)씨와 고향 후배 이모(60)씨도 거사(?)에 끌어들였다.

2016년 11월 2일 이들은 계획을 실행했다. 선박에 불을 지른 건 이씨 몫이었다. 이씨는 오전 5시 인화물질이 잔뜩 묻은 헝겊을 겹겹이 깔아놓은 뒤 양초 3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어 세우고 불을 붙인 뒤 선박을 떠났다. 양초가 모두 타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약 5시간. 헝겊에 옮겨 붙은 불씨가 선박 전체를 뒤덮은 화마로 변한 오전 10시쯤, 이씨는 이미 남아공 케이프타운공항에서 오전 10시30분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써 이씨는 선박 화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됐다.

선박이 성공적으로 불에 타자 이들은 바로 한국 보험사에 피해 신고를 했다. 보험사는 보험사기라 의심했다. 화재 발생 6개월 전 보험 가입금액이 100만달러에서 600만달러로 갑자기 증액돼서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불씨를 제공한 초는 녹아 없어져 현지 수사기관이 ‘원인불상 화재’로 결론 내렸고, 심지어 해당 원양업체를 2년 전 퇴사한 손해사정사 강모(65)씨가 직원들과 말을 맞춰 화재 원인을 ‘전기 누전’이라고 보험사에 보고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보험사는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보험금 67억원을 7차례에 나눠 지급했다. 국내 보험업계에서 선박 화재로 지급된 보험금 중 가장 큰 액수다. 심지어 선박 방화 사기는 이번 사건이 처음이다.

한 제보자의 공익신고가 이들의 덜미를 잡았다. 신고를 접수한 보험사는 올 1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A씨와 범행에 가담한 이들 사이에 수상한 돈 흐름을 포착하고 압수수색 등을 거쳐 5월 21일 방화범 이씨를 검거했다. 이어 범행 전말도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현주선박방화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A씨, 김씨, 이씨 3명을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화재 원인을 전기 누전으로 둔갑시킨 강씨 등 5명도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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