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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랄 총량의 법칙'

입력
2014.11.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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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고 공부 잘 하는 ‘엄친아’도 많건만 왜 유독 내 새끼는 사사건건 어깃장에 하는 짓마다 말썽일까. 이런 고민에 속 끓이는 부모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말이 있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 소개한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누구나 평생 써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사람마다 발현의 시기가 다를 뿐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그 양을 다 쓰게 돼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어릴 때 다 떠는 게 낫다는 얘기다. 한숨과 미움, 육두문자를 참기 어려울 때 이 명언을 떠올려 보라. 꽤 효험이 있다.

▦ 그 법칙에 살을 붙여 좀 고상하게 풀어 쓴 듯한 글귀도 있다.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집 뭐라도 되겠지의 한 대목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자신의 기쁨을 온전하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파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구 뛰어 놀 수 있어야 한다.”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명문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에 온전한 기쁨을 충전해두지 않는다면 길고 긴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터진 수능 출제오류의 파문이 넓고도 깊다. 졸지에 등급이 떨어진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고, 대통령까지 나서 교육당국을 질타하고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다.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수능제도의 개편 방향보다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가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결정한다는 맹신에 빠져 코흘리개 아이들마저 공부경쟁에 내모는 미친 현실 말이다.

▦ 지랄 총량의 법칙의 속뜻을 잘 새기면 위안을 넘어 혜안도 얻을 수 있다. 어디 지랄 뿐이랴. 방황이나 고민, 놀이와 휴식이란 단어를 넣어도 다 말이 된다. 올해 채택 20주년을 맞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도 포함돼 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한국아동권리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려서 바깥놀이를 많이 한 청소년일수록 현재의 행복감도 높다고 한다. 아이들의 행복보다 더 귀한 게 뭐란 말인가. 제발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고 쉬고 방황하고 제 머리로 미래를 고민할 자유를 허하자.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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