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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동년배 박정희와 윤이상의 악연

입력
2017.07.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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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17년 생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작곡가 윤이상이 나란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년배인 두 사람은 일제 때 정반대의 길을 걸었고, 그 후에는 악연으로 얼룩졌다.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윤이상은 해방 후 유럽으로 떠나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박정희가 독재를 하던 때 윤이상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1967년 대통령 부정선거 시비가 일자 박정희 정권은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터뜨렸고, 그 정치 공작의 피해자가 윤이상이었다. 국내에 송환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다가 독일로 추방됐다.

▦ 악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세상에도 없던 윤이상을 다시 끌어내 탄압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윤이상 평화재단’을 포함시켜 기념사업을 치르지 못하게 했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정부 지원이 중단됐다가 탄핵사태 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엔 ‘윤이상 방북’이라고 적혀 있어 수십 년 전의 주홍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줬다.

▦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그의 위상이 재조명 받고 있다. 윤이상은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을 시도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에는 유럽 평론가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으로 선정했고,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건물에는 위대한 음악가 44명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20세기 작곡가는 거쉰, 스트라빈스키, 바르톡과 함께 윤이상이 있을 뿐이다.

▦ 윤이상은 이념을 뛰어넘은 민족주의자였다. 군사정권 때 입국이 금지됐던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고국 방문을 원했지만 정부는 ‘전향서’를 요구했다. 유럽의 친북성향 시민단체도 그의 서울 방문을 반대했다. 양쪽에 상심한 윤이상은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앞으로 모든 통일 운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송두율 <불타는 얼음>) “나는 고향의 정서적인 기억을 온몸에 지닌 채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고향에 가게 되면 통영의 흙에 입을 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갈라진 민족의 화해를 위한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은 그렇게 스러졌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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