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시인

등록 : 2017.03.17 04:40
수정 : 2017.03.17 04:40

20대의 우울이여, 명랑하게 길을 나서자

[4인의 서재] 정우영 에세이

등록 : 2017.03.17 04:40
수정 : 2017.03.17 04:40

오스트리아 빈의 녹색철교. 영화 '비포선라이즈'에서 남녀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안희연

한동안 여행기를 멀리했다. 일탈과 비경과 오지가 사진에 얹혀 달달하게 유혹하지만, 책들은 아무래도 ‘세계테마기행’의 구체적 압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게다가 요즘 여행기들은 여행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팬시상품이나 가이드북 같아서 거의 손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그에게 딱 걸렸다. 안희연.

속내가 궁금했던 시인이었는데 그가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이란 여행 산문을 묶어낸 것이다. 그의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가 내게 매혹적으로 가라앉은 덕일까. 그의 책을 선택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게다가 뒷표지에는 이런 글귀도 걸려 있었다. “이것은 내 이십 대의 전부였던 우울한 명랑의 기록이다. 명랑한 우울이라고 해도 좋다.”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안희연 지음

서랍의날씨 발행ㆍ292쪽ㆍ1만3,500원

이십 대의 ‘우울한 명랑의 기록’이라고? 그래, 맞아. 이런 걸 써야지. 나는 흐뭇해졌다. 어떤 글이든 자신을 걸어야 읽는 재미가 깊어진다. 설레는 눈으로 첫 장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 조금은 뭉개진 듯한 바티칸시티 사진 속에 몽환이 딱 걸쳐 있었다. 내 20대를 온통 뒤흔든 몽환.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에서 피어나 오랫동안 내 골방을 휘저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맞닥뜨릴 줄이야.

자연스레 나는 내 20대의 ‘우울한 나날’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어떠했던가. 후지와라의 좌절에 물들어 인도와 티베트를 몽상하며 날이 저물었다. 나도 그처럼 훌쩍 떠나 좌절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길 바랐지만, 현실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좌절과 우울을 책 속으로 끌고 들어가 거기서 헤매고 부대끼었다. 몽환만 몽글거리던 날들이었다.

반면, 안희연은 어떤가. 그는 후지와라보다도 더 과감하게 길을 나섰다. 그러고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기꺼이 자신을 만났으며 적극적으로 현지를 살고 다녔다. 그의 걸음은 현지를 스쳐가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머물러 그 삶을 호흡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행보를, “‘지금 이 순간의 이름들’로 한 권의 사전을 편찬해 가는 과정”이자, “펼치면 색색의 기억들이 상연되는 극장”이라 부른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순간이 영원으로 집적되어 상연되는 극장과도 같이 내게 다가왔다. 모로코의 탕헤르, 스페인의 그라나다, 인도의 강가와 스라바스티. 이런 지역들이 잇달아 떠올라 내 가슴 속 연상의 무대를 온통 장악하고 있다. 사진과 글의 매혹적인 하모니가 마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공명을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장면은 ‘당신이에요?’라는 꼭지 속에 있다. 독일 뮌헨의 분수대 앞에서 만난 ‘모자 할아버지’. 그는 아내와의 사별 후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이었는데, 늘 같은 자리에서 “모자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자에 대해 호통을 치기도 하고, 은밀하게 속삭이거나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그는 아내의 자리에 모자를 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아내가 “영영 되돌아올 수 없다는 슬픔이,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절망이 어느 날 문득 그에게 모자를 건넸을 것”이고 그는 기꺼이 이에 순응했을 것이다.

나는 이 모자 할아버지 앞에서 숙연해졌다. 그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모자가 있으니 사는 게 분명하지만, 모자랑 살고 있으니 인간적인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죽음과 매한가지다. 그는 이처럼 삶과 죽음의 묘한 변주곡 가운데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평온해 보인다. 삶에 힘들어할 것도 아니고 죽음의 공포에 떨 필요도 없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나날의 순간들에 진심으로 충실하면 된다는 듯이.

안희연이 모자 할아버지를 책 속에 등장시킨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책 속 여기저기에 죽음에 관한 상념들을 파편처럼 떨어뜨려 놓고 있으나, 그가 결국 하고 싶은 전언은 ‘우리 함께 여기서 살다’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아이들 얼굴에서 “죽음이 깊이 스미지 않는 얼굴”을 읽어내는 것은 삶의 안쪽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프랑스에 있는 해변의 묘지를 찾아가 “시와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진 세계”를 갈망할 때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그는 이제 시와 삶을 두터이 살게 되겠구나, 하고.

돌이켜보면 나는 겨우 방안에서 상상을 구현했으나, 안희연은 나라 밖으로 나가 세상을 밟고 다녔다. 그 차이는 크다. 몸에 체감된 실제는 살이 되지만 몽상은 연기만 피워 올리다 만다. 실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 20대는 허황하고 그의 20대는 견고하다. 내 20대는 결코 명랑한 우울일 수 없었으나 그의 우울은 명랑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세상이 바뀌어도 좌절과 고뇌를 짊어진 채 우울해하는 이십 대들에게 살가운 벗이 되어줄 것이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낯선 이국들의 잔재미는 도도록하며 내딛는 발걸음은 씩씩하고 도톰하다. 글줄마다 시적 감성도 짙어서 소리 내어 읽으면 온몸 절로 따뜻해진다. 모처럼 맘에 착 감기는 책을 만났다. 떠나자, 새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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