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ㆍ채혈ㆍ치석제거 담당
내달 수의사법 개정 연내 도입
내년 하반기까지 3000명 양성
동물 스케일링은 마취가 필수
쇼크 등 생명 다룰 전문교육
인건비→진료비 상승 불가피
경험 쌓은 뒤 직접 가게 열면
자칫 무자격 진료행위 양산 우려
자가진료서 반려동물 제외해야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동물간호사 제도다. 정부가 다음달 중 수의사법 개정절차에 돌입해 연내 도입하기로 한 동물간호사 제도는 동물병원에 주사나 채혈, 치석 제거를 위한 스케일링 등을 담당할 간호사를 두겠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3,000명의 동물간호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만큼 수의사와 동물 생산업, 판매업, 관련 직종 종사자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반려동물들의 건강에 득이 될 지, 해가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등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동물간호사 제도 도입 전에 몇 가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반려동물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전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소속인 명보영 광주 주주동물병원장은 “반려견의 스케일링은 사람과 달리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의사가 아닌 비전문인이 시술하면 동물들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고 주사의 경우에도 쇼크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며 “전문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약 20개 애완동물학과 교수들이 주축인 동물복지학회 측에서도 이를 감안해 교육 여건을 갖추는 등 관련 준비를 하고 있다.
자가 진료에 대해서도 반려동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수의사법에 명시된 자가 진료란 동물병원에 바로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 반려동물이나 가축들을 돌볼 수 있도록 직접 사육하는 동물에 한해 진료를 허용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를 악용해 강아지공장 등에서 사육업자가 어미개의 배를 가르는 수술을 통해 강아지를 꺼내도 처벌할 수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수의사들은 물론이고 동물복지학회, 농식품부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를 막으려면 자가 진료 대상에서 반려동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수의사들은 동물간호사들이 잇따라 애완동물가게를 열어 직접 진료에 나서면 반려동물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동물병원들의 우려는 이미 일부 동물병원 등에서 무자격자의 진료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동물자유연대는 무자격자에게 진료 행위를 시킨 부산 진구의 한 동물병원 수의사와 해당 직원을 수의사법 위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해당 병원 수의사는 수의사가 아닌 일반 직원에게 유기견의 스케일링을 지시했다. 수의사법에 따르면 동물의 잇몸 질환을 막기 위해 실시하는 스케일링은 진료행위여서 수의사만 할 수 있다.
특히 이 병원은 일반 직원이 유기견을 이용해 신입직원에게 스케일링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신입직원은 “불법이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니 가르쳐주겠다고 말해 너무 놀랐다”며 “유기견을 직원들의 실습 도구로 삼은 것도 문제”라고 증언했다. 해당 병원 수의사와 직원은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10여개 체인점을 둔 A동물병원도 지난해 수의사법을 어기고 일반 직원이 채혈, 방사선촬영 등 진료 행위를 한 사실이 적발돼 3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처럼 국내에 동물간호사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보조인력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않고 수의사의 진료를 돕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를 동물간호사 제도가 필요한 이유로 보고 있다. 수의사 김 모씨는 “차라리 전문 지식을 갖춘 동물간호사를 양성해 일반 직원들의 불법 스케일링 등을 대신 하는 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입에게는 더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물간호사가 도입되면 진료비가 오를 수 있다. 아무래도 전문 인력인 만큼 동물병원들이 일반 직원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줘야 하고 이렇게 되면 인건비 상승이 곧 진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농식품부에서도 대형 동물병원 등에서 동물간호사를 채용하면 그만큼 인건비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수의사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동네 소규모 동물병원들은 인건비 상승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동물복지학회 관계자는 “동물간호사 채용이 의무는 아닌 만큼 소규모 동물병원들은 인건비 상승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동물간호사 제도 도입을 서두르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정착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국가에서 자격 등급을 세분화해 면허를 발급하는 동물간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민간단체가 인증해주는 민간자격 제도로 운영되는데 채혈, 스케일링 등을 할 수 있는 미국, 영국의 동물간호사와 달리 진료준비, 입원동물관리, 수술보조 등 기본적인 수의사 보조 업무만 할 수 있다. 이형주 동물보호 활동가는 “제약회사, 동물원 등에서도 수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동물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동물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동물간호사 도입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된 진료를 위해 전문 교육과정을 갖추고 수의사법의 자가 진료 제를 폐지하는 게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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