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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시 열풍 톺아보기

입력
2017.11.17 14: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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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5년 간 공무원 17만4000명을 추가 선발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공시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올 하반기 316명을 선발하는 9급 공채에 9만5,390명이 몰려 301.9대1이라는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게 그 방증이다.

공시 열풍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무엇보다 우리 젊은이들이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안정을 훨씬 선호한다는 뚜렷한 징후로 읽힌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활력을 상실하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짐 로저스는 청년 대다수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는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지적하며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공시에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큰 틀에서 보면 공시 열풍의 배경은 몇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공시에 매달리는 당사자 입장에선 하나하나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다.

우선 취업난이 심각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문제다. 이 때문에 공무원 선호 현상이 우심해지고 있는 게 작금의 우리 실정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청년층은 직장으로 국가기관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13~29세 청년층 가운데 25.4%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국가기관을 꼽았는데, 이는 2년 전 조사 때보다 1.7%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공무원은 수입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앞서 언급한 2017년 사회조사에서 우리 청년층은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수입(39.1%)을 꼽았다. 이처럼 수입을 중시하는 청년층에게 공무원은 기대를 충족하기에 무척 적합한 직업이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펴낸 한 보고서는 7·9급 공무원이 퇴직 전까지 버는 누계 소득이 대기업 취업자보다 최대 3억3,605만원 많은 것으로 추계했다. 민간 기업 취업자보다 높은 임금 인상률과 늦은 퇴직 시점 때문에 공무원이 평생소득에서도 우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공정성이 담보된 취업 통로라 여겨 공시를 선택한 젊은이도 꽤 있음직하다. 지금까지 불거진 것들만으로도 공공기관의 인력 채용 과정이 온갖 권력형 청탁으로 오염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기댈 연줄 하나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공시에 모든 걸 건다면 조금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공시 열풍에 저출산 세대의 성격적 특성이 투영되어 있을 개연성도 크다. 중국은 인구 억제를 위해 1979년에 ‘한 자녀 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호주의 계량경제학자 카메론 교수 연구팀은 2013년에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위험을 회피하는 성격의 아동을 양산했음을 보고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세대도 이전 세대에 비해 위험 회피적 성향이 강할 공산이 크다. 더욱이 한국 부모는 중국 부모에 비해 자녀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훨씬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저출산 세대에게 안정적인 공무원이야말로 꿈의 직업이 될 수 있다.

공시 열풍을 청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일자리 상황이 너무 어렵다. 따라서 공시 열풍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키우기 위한 체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창업을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도 다각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에서 정부가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공무원 인기가 크게 떨어진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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