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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비관과 비판 사이에서

입력
2017.09.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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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교육 분야의 국민여론이 부정적이라 걱정이다. 교육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비관이 압도한다. 가끔 비관과는 구분되는 비판적 견해를 접하는데, 느낌이 다르다. 부정적으로 흐르지 않고 희망의 정서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문제가 심각해도 적폐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책이 분명하다면 오히려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해방은 됐지만 일제 식민교육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역대 정권이 계속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심화된 적폐는 온 몸에 퍼진 암세포 같다.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는 공교육, 마침 동네 골목까지 들어선 사교육에 기대어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된 학부모들, 그들은 이제 경제력과 정보력까지 요구되는 상황의 악화에 더욱 비관적이 되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교육이기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려면 이미 충분히 비관적인 학부모들의 심정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출발이어야 하는데 이기적이라는 비난, 우리의 아이들을 함께 걱정하지 않고 자기 새끼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에 몹시 화가 난다.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만으로 안심할 수 없기에 공교육 운영자금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따로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인데 이기적이라니. (물론 일부 상류층의 공교육 파괴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국가의 공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사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민은 쉽게 지치고 비관으로 흐른다. 지금 우리 학부모들이 딱 그렇다. 그래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아이에게 자주 화내고 체벌까지 하는 부모들이 크게 반성하고 비폭력대화를 배워 소통을 결심하지만 일상에서 다시 성질을 부리고 나서는 자책한다. 아이를 닦달해가면서 공부시키는 옆집 엄마처럼은 하지 않겠다고 자기주도학습을 결심하지만 어느새 아이 공부를 관리하느라 다투고 나서는 자책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느새 엄친아를 들먹이며 아이 기를 죽이고 분을 풀고 나서는 자책한다. 흔히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고, 실천은 원래 어렵다고 합리화하지만 비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기껏 반성하고 가다듬은 교육적 소신과 실천의지가 희미해진 상태에서 아이를 만나기 때문에 자책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관적인 부모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대부분 자신보다 약자인 아이에게 쏟아내기 십상이다. 세상 탓을 해야 마땅한데 아이 탓을 하니 아이들이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반면 비판적부모는 자신은 물론 아이도 비관적 교육 현실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쪽으로 부모역할의 가닥을 잡아나간다. 비판적인 부모는 아이와의 공감대를 넓혀가지만 비관적이 된 부모가 던지는 비난은 아이에게 거부감만 일으켜 같이 망가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비관적이 된 학부모들이 아이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부모와 아이 사이는 물론 한 가정을 얼마나 엉망으로 만드는지 너무나 많이 봤다. 당연히 비관적이 되면 안 되고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다. 비관을 비판으로 바꾸려면 희망의 정서가 꼭 필요한데 현실은 정반대의 정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거는 희망, 바로 비관적 현실에서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학부모 공동체가 소중하다. 각자도생의 어려움에 처한 학부모들이 모여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고 밝게 웃는다. 더 이상 비관적으로 싸잡아 비난하지 말고 진정한 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이나마 지지를 보내자는 학부모들의 변화에서 교육 적폐 청산의 희망을 찾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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