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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임을 위한 행진곡과 오컴의 면도날

입력
2016.05.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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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의 일이다. 당시 대학가에는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1980년 5월의 광주 영상자료를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돌고 있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그 테이프를 상영하기로 했다. 1980년 광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오셨다. 물론 진보적인 담임목사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대학부 담당 부목사님을 통해 상영하지 말라고 하셨다. 안기부 소속 공무원인 한 집사님이 강력히 반대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는 자기는 해외출장을 떠났다.

영상을 보겠다는 신도들과 틀어서는 안 된다는 집사와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목사님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그냥 비디오를 틀었다. 어쨌든 우리는 담임 목사님의 허락을 받았으니까.

교회 일이 다 그렇지만 다음 주에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온했다. 심지어 안기부 집사님의 눈에서도 독기가 빠져 있었다. 몇 주 후 돌아오신 담임목사님도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사님의 지혜를 얘기했다. 누구 편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해주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가. 나는 아직도 그 목사님을 존경하지만, 그건 아니다. 목사님은 결국 우리 편을 들어주신 게 아니라 책임을 방기했다. 목사님은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부목사와 신도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목사가 되면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목사가 되지 못했다.)

우리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로 교회에서 소동을 벌이기 2년 전이던 1982년 2월 20일 특이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배자였던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었다. 신랑은 1980년 사망한 윤상원 그리고 신부는 1978년 사망한 박기순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짧은 인연이 있다. 신랑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지만 정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한 ‘들불야학’의 교사로 활동했으며, 신부는 들불야학의 창립멤버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윤상원은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가 광주도청이 함락된 5월 27일 사망했다.

소문 없이 열린 결혼식은 역사적인 노래 한 편을 남겼다. 백기완의 옥중 시 ‘묏비나리’를 토대로 황석영이 작사한 노랫말에 윤상원의 전남대 후배 김종률의 선율을 입힌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로 그것. 제목은 행진곡이지만 이 노래는 진혼곡이다.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월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월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내내 대학과 거리에서 불려졌다. 이제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대만, 홍콩의 시민들도 자기네 말로 부른다. 때로는 록으로 때로는 발라드로 장르를 넘나들기도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상징이며 세계의 역사가 된 노래다. 특히 5월 광주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놓을 수는 없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없는 기념식은 기념식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5·18 민주화운동 36주기 기념식을 앞두고 다시 문제가 되었다.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식순에 합창으로 들어가 있으니 합창할 때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라는 게 보훈처의 입장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과 여야 3당의 원내지도부가 회동하는 자리에서 야당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도록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여기에 대해 대통령은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법을 찾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응답하였고 국민과 언론은 대통령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보훈처에 따르면 극우 보수 단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에서도 불린다는 이유로 반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원’이나 ‘고향의 봄’ 그리고 ‘아리랑’은 어쩔 것인가. 극우 보수 단체는 5ㆍ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부정한다. 국가보훈처가 이런 극단적인 견해를 고려할 이유가 없다. 5ㆍ18 민주화운동은 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며 국가에서 공식적인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역사다. 제창은 야당만 요구한 것도 아니고 여야 3당이 함께 요구한 사항이다. 제창하고 따라 부르지 못할 사람은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은 일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한다.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옹호하는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이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역행’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을 도입해야 했다. 천체운행도가 아주 복잡해졌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천문학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태양의 자기를 맞바꾸는 것만으로 행성의 역행을 비롯한 모순을 간단히 해결했다. 더 이상 주전원과 이심 같은 구차한 장치들은 필요 없었다. 우주의 구조는 심플했다. 14세기 영국 철학자 윌리엄 오컴은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이론과 간단한 이론이 있을 때, 복잡한 이론이 맞는다는 확증이 없는 한 간단한 이론을 선택해야 한다.” 이 논리를 우리는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한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최대한 간단하게 잘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탐욕’이며 갖추어야 할 최소한 것은 바로 ‘염치’다. 염치만 있으면 누구나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대한민국의 전진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기리는 노래 하나를 편하게 부르지 못하는 나라를 변명하려면 너무나 많은 구차한 논리들이 필요하다. 깔끔하게 가자. 국론분열을 막자. 대통령이 부르면 된다.

서울특별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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