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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가

등록 : 2017.06.14 04:40

[천운영의 심야 식탁] 고로케 크로켓 크로케타

등록 : 2017.06.14 04:40

스페인에선 크로켓(고로케)을 크로케타라 부른다. 우리가 보통 먹는 고로케보다 튀김옷이 얇고 크기가 작다. 천운영 제공

첫 번째 고로케 맛을 기억해 본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옆 노점. 메뉴는 두 가지. 햄버거 빵에 가늘게 썬 양배추 넣고 분홍 소시지 한쪽 올려 케첩 뿌린 야채빵.

그리고 고로케. 가격은 같다. 크기로 보자면 야채빵의 압도적인 승리. 하지만 빵가루 입혀 튀긴 고로케의 기름진 맛에 비할쏘냐. 만두 맛도 나고 카레 맛도 나고 잡채 맛도 나고. 이름도 좀 있어 보이는 고로케. 케첩 듬뿍 뿌려 혓바닥으로 살살 핥아가며 야금야금. 그 맛 꽤나 좋아했더랬다.

그러다가 으깬 감자를 뭉쳐 만든 부드러운 고로케를 맛보았을 때, 그 동안 내가 먹었던 고로케는 뭐였나 싶었다. 만두 속을 넣은 넙대대한 튀김빵을 고로케라 믿었던 시간이 억울했다. 속을 채운 것이 아니라 속 자체를 튀겨낸 고로케. 이게 진짜 고로케지. 고로케가 크로켓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 따위는 별 의미 없는 얘기. 진짜 크로켓을 맛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시절 고로케와 맥주의 완벽한 궁합에 빠져 지냈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크로케타가 있다. 문방구 옆 노점은 아니지만 웬만한 타파스 집에는 다 있고, 정통 레스토랑 메뉴로도 번듯하게 존재하는 크로케타. 하몽과 치즈를 넣은 것에서부터 버섯 새우 문어 아스파라거스 등 속도 참 다양해서, 골라먹는 맛 가볍게 즐기는 맛으로, 맥주 한 잔에 크로케타, 참으로 먹었다. 그런데 이게 결코 만만한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은 스페인을 떠나기 직전에 알았다.

말라가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기 전날.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냥 보내기는 영 아쉬우니,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메뉴를 알려줬다. 전통 음식 푸채로(puchero). 이걸 먹지 않고서는 스페인 맛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반드시 내 할머니가 만든 것이어야 한다, 할머니의 푸채로가 진짜 푸채로, 그걸 맛보게 해주마. 친구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푸채로. 천운영 제공

푸채로는 작정하고 한 솥 가득 끓여서 여럿이 나눠먹는 일종의 잔치음식이다. 잔치를 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적게 만들려 해도 한 솥이 되고 이왕이면 큰 솥 그득하게 끓여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푸채로에는 온갖 종류의 육고기가 다 들어간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초리쵸 순대, 살코기는 물론이고 뼈와 소금에 절인 돼지기름과 양기름까지, 고기라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넣는다고 보면 된다. 푸채로가 완성되면 일단 고기부터 건져먹은 다음, 남은 국물에 감자나 콩 국수 등을 넣고 끓인 수프를 먹는다. 각종 고기기름과 뼈의 진액이 다 녹아 든 국물과, 결대로 가닥가닥 다 풀어져 국수처럼 남은 닭고기 살까지, 한 그릇 먹고 나면 땀이 쭉 나면서 든든해진다. 말린 근대를 넣기도 하는데, 모양새만으로는 우리의 장터국밥과 완전히 닮았다.

이제 크로케타가 남았다. 푸채로를 차갑게 식히면 뼈에서 나온 성분과 기름성분 감자전분 고기살 등이 서로 엉겨 묵처럼 굳는다. 이걸 숟가락 두 개로 이리저리 모양을 잡은 다음 빵가루를 입혀 튀기면 크로케타가 된다. 뜨거운 손이 닿으면 국물이 모양을 잡기 어려우니 반드시 숟가락을 사용할 것. 내게 크로케타 만드는 법을 알려주며 친구의 할머니는 여러 번 강조했다. 이게 진짜 크로케타라고. 푸채로 크로케타가 진짜 크로케타라고. 그러니까 크로케타는 말하자면 잡탕고깃국 튀김, 한 솥 그득 끓여 잔치를 하고 난 후에야 맛볼 수 있는 정점의 요리.

그 맛은 정말 먹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아, 그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라니. 한 입 베어 물면 크림치즈처럼 진한 고기감잣국이 입 안 가득. 입안에서 뭔가 감미로운 것이 녹아 내린다는 바로 그 느낌. 이 맛을 어찌 보여주나. 잔치를 한번 크게 벌여야 하나?

소설가

푸채로 크로케타. 천운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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