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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두 남자의 칠순 생일

입력
2017.10.24 15: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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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두 남자가 있다. 비슷한 시기, 두 사람 모두 70 평생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생일을 맞았다. 두 사람이 맞은 생일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한 사람은 아들, 딸, 사위에 손자까지 온 가족이 모여 레스토랑에서 흥겹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한 사람은 몇몇 공적인 모임에서 의례적 인사말을 들은 후, 주말에 홀로 손자를 보러 어색한 손님의 그림자처럼 집을 찾아왔을 터였다. 앳된 며느리가 미역국을 끓여줬다.

두 사람의 지난 인생을 두고 누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기도 하려니와, 의미도 없다. 내가 그들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 수야 없지만, 대체로 다들 매우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고, 적지 않은 성취도 이루었다. 그 세대의 어른들이 대게 그러하듯, 서로 길은 달랐지만 어린 시절의 극심한 가난과, 청년 시절의 설움과, 중년 시절의 투쟁과, 장년 시절의 복잡다단한 얽힘을 공히 겪었다. 대부분의 사회적 시간을 한 사람은 언론인으로, 다른 한 사람은 대학 교수와 공직자로 ‘소모’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내가 쓴 ‘소모’라는 표현에는 비하의 뜻이 없다. 다만 그 시간은 그냥 그렇게 스러지듯 지나갔고, 그들이 한창 때 무엇을 했다는 것은 현재 후세대의 기억에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남자는 이제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당신이 메이저 언론사의 편집국에 있을 때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고. 퇴사할 때, 당신이 빠지면 조직이 당장 멈춰 설 것만 같았다고. 막상 나가니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 진심으로 놀랐다고 했다. 자신이 사회에서 받던 온갖 대접들이,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큰 조직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다른 한 남자는 아직도 웃으며 이야기하는 법에 서툴다. 아직도 현업에 있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한마디를 얹는다. 진작에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알았을 테지만, 일개 신문사 조직보다는 더 큰 세상을 보다 올바르게 움직이고 싶었을 터였다. 이미 그에게는 자신의 지나간 어리석음에 대해 털어놓을 만한 삶의 웃음이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존경도, 권력도, 오래 전부터 뿌려 댄 자의식의 화장수처럼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그들 삶의 궤적을 나란히 바라보며, 성공에 대한 의지와 능력은 물론 삶의 지혜나 올바름조차 70 평생의 대차대조표를 결정짓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을 한다. 그보다는 사랑 받을 만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누구에게 감정적으로 투자했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누가 찾아오고, 보고 싶어 하는지. 가장 실속 있는 ‘인간연금’이다.

내가 겪은 한국 사회는, 그런 ‘인간연금’의 사회문화적 자본이 고갈되어 있다. 권위적 위계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1등과 성공만이 강조되다 보니,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갑질에 길들여진 채 치졸한 경쟁과 뒤통수 때리기를 ‘인정투쟁’이라 합리화하는 소시오패스들이 거침없이 길러진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인간시장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아는 두 남자는 그래도 아름답게 산 듯하다.

두 남자의 남아 있는 나날을 상상하며,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든 나는 또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심한다. 그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나 또한 가난과, 투쟁과, 복잡다단한 얽힘을 경험할 것이다. 어떤 성공과 실패를 하든, 내 지나간 삶을 반추할 눈빛과 입은 남게 될 것이다. 그땐 진심으로 염원한다. 나의 지난 어리석음이 새로운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기를. 지나친 자의식이 웃음을 말리지 않기를. 가족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여유를 넉넉히 투자해 둬야겠다.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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