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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 실험? 혁오의 공연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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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 실험? 혁오의 공연은 남달랐다

입력
2017.06.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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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혁오의 공연은 연극적이었다. 무대엔 늑대의 탈을 쓴 소품(왼쪽)까지 등장했다. 두루두루AMC 제공
밴드 혁오의 공연은 연극적이었다. 무대엔 늑대의 탈을 쓴 소품(왼쪽)까지 등장했다. 두루두루AMC 제공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밴드 혁오의 공연은 기묘했다. 무대 위엔 늑대의 탈을 쓴 양 모양의 소품이 놓여 있었다. 순수와 탐욕을 동시에 드러낸 상징물을 비롯해 무대엔 이중적인 이미지들이 넘쳤다. 연주하는 혁오의 뒤로 무대 벽면엔 네 멤버의 그림자가 공연 내내 일렁였다. 그림자가 연주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눈앞의 혁오와 혁오의 이면(그림자)이 함께 만든, 현실과 가상의 이중주처럼 보였다. 새 앨범 ‘23’에서 청춘의 빛과 그늘을 노래한 혁오는 공연에서도 모순의 공존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5년 공연에서 샤막(얇고 투명한 막) 뒤에서 연주를 해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한 밴드의 실험은 계속됐다. 이번 공연에선 초현실적 설정이 눈에 띄었다. 무대 뒤엔 마네킹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큰 문이 설치돼 있었다. 공연이 중반으로 접어들자 커튼이 처진 문에서 무대 쪽으로 바람이 계속 들어왔다. 혁오의 음악이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다리가 된다는 은유다.

혁오의 공연은 연극 같았다. 여신동 감독이 무대 연출을 총괄해 나온 변화였다. 여 감독은 연극‘소설가 구보 씨의 1일’, ‘헤다가 블러’, ‘목란 언니’ 등의 무대 디자인을 맡아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은 창작자다. 노상호 작가와 손잡고 독특한 앨범 재킷 사진을 만들어 온 오혁이 이번엔 여 감독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콘서트 연출에 도전했다. 대형 LED 화면에서 컴퓨터 그래픽만 쏟아내는 여느 K팝 아이돌 공연에서 볼 수 없는 혁오의 작가적 실험은 신선했다.

밴드 혁오의 공연은 빛에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났다. 공연 시작 무대에 작렬하는 태양 모양의 소품이 떠오른 뒤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불이 점점 약해졌다. 두루두루AMC 제공
밴드 혁오의 공연은 빛에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났다. 공연 시작 무대에 작렬하는 태양 모양의 소품이 떠오른 뒤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불이 점점 약해졌다. 두루두루AMC 제공

혁오의 이번 공연은 강렬했다.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 ‘23’의 수록 곡을 주로 연주해 터질듯한 기타 연주와 드럼 연주가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혁오는 ‘23’에 실린 ‘완리’, ‘도쿄 인’, ‘가죽 자켓’, ‘다이 얼론’, ‘톰보이’를 비롯해 ‘와리가리’와 ‘위잉위잉’ 등 히트곡을 선보여 4,000여 관객의 환호를 샀다.

티켓 매진을 증명하듯 공연장은 빈자리 없이 관객들로 가득 찼다.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지만, 비주류 장르인 록 음악을 하는 밴드로서 보기 드문 관객 동원력이다. 오혁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3~4번 반복하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했다. 무명 시절 5명 앞에서 연주한 적도 있다는 오혁은 “내가 음악을 하는 일이 의식주와 관련된 것도 아니지 않냐”라며 “(음악을) 안 듣고 (공연을) 안 봐도 다들 사는 데 지장 없는 데, 내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해야 하나란 고민을 한 적도 있다”는 옛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인기를 얻고 달라진 음악 작업 관도 들려줬다. 오혁은 “이전엔 음악 작업을 할 때 청자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며 “우리 음악이 다양하게 소비되는 걸 보고 (동시대사람들의 생각을)반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공연을 빛낸 건 관객들이었다. 혁오가 마지막 곡으로 ‘폴’ 연주를 시작한 뒤 무대에 불이 꺼지자 관객들은 휴대폰 앱으로 조명을 켜 공연장을 밝혔다. ‘왜 우린 등 떠밀려 저물까’라며 청춘의 절망을 노래한 ‘폴’에서 관객들이 밝힌 희망의 불이었다.

밴드 공연에는 4,000여 관객이 몰렸다. 두루두루AMC 제공
밴드 공연에는 4,000여 관객이 몰렸다. 두루두루AMC 제공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지만, 음향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 박수희(40)씨는 “보컬인 오혁의 목소리가 연주 소리에 너무 묻혔다”고 안타까워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도 ‘소리가 뭉개져 아쉬웠다’(kdo0****)며 공연 음향의 불안함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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