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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소외된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질병, 루게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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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소외된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질병, 루게릭병

입력
2018.06.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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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준 한국루게릭병협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2014년 여름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세계적으로 유행해 루게릭병(근위축측삭경화증ㆍALS)을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해외에서만 1,700만명이 참가해 미국루게릭병협회(ALSA)에만 1,300억원을 기부했다. 한국루게릭병협회(KALSA)에 들어 온 많은 기부금은 아직 부족하지만 루게릭병 환우 복지와 전문요양소 건립을 위해 적립 중이다. 다시 한번 감사한다.

루게릭병을 진료ㆍ연구하는 의료인으로서 이 병을 설명할 때 “루게릭병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제일 고통스러운 병”이라고 가장 먼저 말한다. 사실이다.

암을 제일 무서운 병이라고 알지만 의학 발달로 완치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반면 루게릭병은 치매ㆍ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이면서도 진단 후 평균 2~3년 내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거의 사망한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생명을 연장해도 환자는 말도 못하고, 음식도 못 먹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해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이런데도 정신은 또렷하고 감각도 온전해 더 고통스럽다. 24시간 내내 누워 천정을 쳐다보고 있지만 숨 막혀도 도움을 청하지 못해 고스란히 고통을 느끼면서 가족이 빨리 발견해주기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많은 환우가 이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한 뒤 목숨을 잃는다. 올 2월 4일 웰다잉을 규정한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자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떼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의료인은 루게릭병은 이 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환자에게 설명하면서 치료제가 거의 없어 별 도리가 없는 상황에 큰 좌절감을 맞보고 있다.

루게릭병은 또한 50~60대에 많이 발병하다 보니 배우자나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 초년생 자녀가 가족 환자를 24시간 돌보기 위해,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고 간호에 매달려 가족 전체가 불행해지는 안타까운 병이다. 이처럼 온 가족에게 괴로움을 주는 병이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떠들썩한 상황 속에서 루게릭병 환우는 소외되고 있다. 복지를 최우선시하는 현 정부에서 이런 일이 루게릭병이 단순히 발생률이 낮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 병은 희귀질환이라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고 있고, 장애상태가 되면 장애인 등급에 따른 복지혜택까지 받아 표면적으로는 여러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병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가장 난치병이며, 이처럼 진행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24시간 타인의 집중적 간호가 없으면 생존할 없으면서도 인지기능은 정상인 질환은 극히 드물다.

이 질병의 위중을 소득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측정법을 적용해 비유하면 극빈층 가운데 초극빈층이고, 최중증장애이다. 전 국민을 포용하는 복지정책을 추진하는데 초극빈층ㆍ최중중장애인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이기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루게릭병 환우의 가장 큰 현안은 최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의 특화 및 24시간 지원, 중증장애인 가족의 장애인 활동지원 허용, 활동지원서비스 연령제한 폐지, 그리고 연구지원이다. 정부로부터 활동지원 서비스 혜택을 받아도 최중증장애인을 돌보려고 하지 않아 활동보조인을 구할 수도 없고, 구했다 해도 간호행위를 못해 결국 가족이 돌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족이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는 것조차 막혀 있다.

이 병은 점점 장애가 심해지는데 65세가 넘으면 장기요양보험으로 넘어가 활동지원 서비스가 오히려 줄어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한다. 또한 환자 한 명당 사회경제적 비용이 제일 큰 질환인데도 연구와 신약개발 지원은 희귀질환의 전체 그룹에 묻혀 미미하다. 질병 메커니즘 상 독립적인 연구와 신약 개발 지원이 절실하다.

성정준 한국루게릭병협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성정준 한국루게릭병협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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