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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국제학생의 날(11.17)

입력
2017.11.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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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3월 체코 프라하에 진주한 나치. 시위 대학생들을 유혈 진압한 것을 계기로 세계학생의 날이 제정됐다.
1939년 3월 체코 프라하에 진주한 나치. 시위 대학생들을 유혈 진압한 것을 계기로 세계학생의 날이 제정됐다.

냉전기 세계의 대학들도 이념 대립과 세력 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서방의 ‘국제학생회의(ISC, International Student Conference)’와 소비에트의 ‘국제학생연맹(IUS, International Union of Students)’은 냉전의 격전지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학생 단체를 대상으로 교육정보 및 자재 제공, 유학 알선 등을 앞세워 세 불리기 경쟁을 벌였다. 전자의 배후에는 영국과 미국 특히 미 CIA가 있었고, 후자의 뒤에는 발상지인 체코를 앞세운 소비에트가 있었다.

원조는 1941년 영연방 국가 대학생들의 주도로 출범한 ICS였다. ICS는 2차 대전 연합국 중심의 대학생 단체로 반파시즘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서방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IUS는 그에 맞서 46년 8월 체코 프라하에서 출범했다. 조직적 공세는 IUS가 한 수 위였다. 그래서 ICS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출범한 게 50년 스웨덴 스톡홀름 창설된 ISC였다.

67년 ISC의 배후에 CIA가 있고 예산의 대부분도 거기서 나온다는 사실이 폭로됐고, 재정지원이 끊기면서 ISC는 69년 해체됐다. IUS는 80년대 말 소비에트가 해체될 때까지 국제학생연맹회의, 청년학생축전 등을 개최하며 건재했다. 국제학생연맹회의는 제3세계 청년지도자들의 정치무대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전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스웨덴 정치인 올로프 팔메 등이 국가 대표로 IUS 회의에 참가했다. 세계청년학생축전은 47년 프라하에서 1회 대회가 열렸다. 89년 7회 대회가 평양에서 열렸고, 한국의 임수경 등이 참가했다. 89년 이후, 소비에트의 지원이 사실상 끊기면서 IUS도 쇠락했다. 92년 사이프러스 총회에서 IUS는 이념 지향을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규약을 개정하고 지도부를 혁신했다. 현재 IUS는 유네스코 자문기관으로, 세계 학생들의 교육 기회 확대와 복지, 인권 등을 위해 활동한다.

11월 17일은 ICS가 41년 제정한 ‘국제 학생의 날’이다. 39년 체코 대학생들이 나치 침략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날이다. 나치는 무력 진압 과정에서 9명을 살해하고 1,200여 명을 연행해 강제수용소로 보냈고, 체코의 모든 대학을 폐쇄했다. 어렵사리 영국으로 피신한 이들이 ICS의 이름으로 저 날을 제정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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