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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손맛만큼… 입맛 다잡는 '미사일'

입력
2016.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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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철이 시작되었다. 제철 걷어올린 방어는 몸 길이 1m를 훌쩍 넘기고 몸무게도 10kg 이상으로 살이 꽉꽉 오른다. 대체로 1m 이상 크기일 때 대방어라고 부른다.
방어 철이 시작되었다. 제철 걷어올린 방어는 몸 길이 1m를 훌쩍 넘기고 몸무게도 10kg 이상으로 살이 꽉꽉 오른다. 대체로 1m 이상 크기일 때 대방어라고 부른다.

강태공 사이에서 ‘미사일’로 불리는 생선이 있다. 무사히 잘 자라면 몸 길이 1m를 훌쩍 넘기는 방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큰 몸이 온통 다 단단한 근육질이다. 미사일처럼 빠르고 힘이 거세다. 낚시꾼들 사이에선 그 억센 손맛을 예찬하는 의미로 미사일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미사일 낚시가 재미있는 계절이 됐다.

이동 거리로 놓고 보면 장거리 미사일이다. 방어는 회유어종이다. 동해안 찬 물에서 지내다가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 바다로 휴가를 떠난다. 산란도 겨울에 마친다. 제주도 인근과 남해안 일대가 그들의 허니문 장소다. 방어는 정어리나 오징어 등 만만한 바다생물을 닥치는 대로 먹으며 쑥쑥 자라는 육식어종이다. 산란기에는 온 몸에 기름이 가득 차오른다. 그래서 겨울철이고, 제주도다.

방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의 제주도 방어는 빼놓을 수 없는 계절 별미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바다의 사정과 관계 있다. 작년과 올해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자 강원도에 올라갔던 방어들이 제주도로 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제주도에서 방어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고 동해안 대진, 속초, 포항 등의 방어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 주말 제주도 모슬포에서 열린 방어 축제를 대비해 모자란 방어 물량을 강원도에서 마련해갔다는 소문도 유통업자들 사이에서 돈다. 그래도 지난주부터는 제주도에도 방어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변은 이뿐이 아니다. 올해는 방어철도 예년에 비해 이르게 왔다. 바다의 시간은 음력으로 흐르는데, 올해 음력이 빨라서다. 이미 10월부터 방어가 나왔다. 피크는 지금부터다. 노량진수산시장 29번 중매인 청해수산 노재민 대표는 활어와 선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데 겨울의 주요 품목은 역시나 방어다. 11월 말부터는 몸 길이 1미터 넘는 진정한 대방어가 쏟아져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강원도에서 11월까지 나오고 그 후 제주도, 추자도 해역에서 많이 나는데 올해는 강원도에서 초반부터 물량이 쏟아져 나옵니다. 작년 이 시기에 비해 세 배로 물동량이 늘었어요. 올해는 피크에 이르면 대방어 1㎏당 2만4,000원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봅니다. 역대 가장 많이 오른 게 2만8,000원이었는데 올해는 물량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치솟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해체를 위해 도마 위에 오른 90cm, 10kg짜리 대방어. ‘쿠마’의 김민성 오너셰프가 칼을 쥐고 있다.
해체를 위해 도마 위에 오른 90cm, 10kg짜리 대방어. ‘쿠마’의 김민성 오너셰프가 칼을 쥐고 있다.

크면 클수록 맛있는 방어

생선 값은 맛에 비례한다. 또한 방어는 크면 클수록 맛이 좋다. 먹으면 먹는 대로 한창 몸집을 불려가는 성장기 방어보다는 성장을 마치고 살이 올라가는 방어가 맛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3~5㎏ 사이를 소방어, 5~8㎏를 중방어, 10㎏ 이상을 대방어로 치는데 단가 차이가 상당하다. 단가야 물량에 따라 그날그날 큰 폭으로 변하지만 11월 넷째 주 현재 방어 가격대는 소방어가 ㎏당 5,000원에서 8,000원, 중방어 1만3,000원, 대방어 1만8,000원선으로 형성돼있다. 중방어와 대방어 사이의 8~10㎏는 유보적인 구간이다. 그날그날 시장에 풀린 방어의 크기에 따라 중방어가 되기도 하고 대방어로 치기도 한다. 10㎏ 넘는 방어가 적게 들어오는 날은 8㎏부터도 대방어로 쳐준다. 10㎏이면 몸길이 90㎝~1m 정도다.

발라낸 대방어 살코기는 큼직하기가 육고기 덩어리 같다.
발라낸 대방어 살코기는 큼직하기가 육고기 덩어리 같다.

5㎏일 때 파는 것보다 10㎏일 때 파는 것이 월등히 남는 장사이다 보니 덜 자랐을 때 저렴하게 구매하는 등 거둬둔 방어를 가두리에서 마저 키워서 10㎏일 때 출하하는 일도 흔하다. 물량이 많은 날도 가두리에 일부를 넣어 뒀다가 시기를 봐서 풀기도 한다. 가두리에 넣고 사료를 먹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엔 탄생부터 평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니 양식이라기보다는 축양이다. 사료 대신 정어리를 잡아 먹이는 어민도 있지만 시장에서 그 노력이 구분되기는 힘들다. 어시장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비늘 하나 떨어진 곳 없이 몸체가 깨끗하고 그날 잡아 올려 바로 들어온 10㎏ 이상의 대방어다.

향긋한 활어로, 고소한 선어로

몸체가 큰 방어는 부위마다 맛도 생김새도 확연히 달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마살, 중뱃살, 대뱃살, 꼬릿살, 볼살, 등살.
몸체가 큰 방어는 부위마다 맛도 생김새도 확연히 달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마살, 중뱃살, 대뱃살, 꼬릿살, 볼살, 등살.

방어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회다. 몸 길이 1m, 체중 10㎏ 넘는 멋들어진 대방어쯤 되면 소나 돼지처럼 부위별로 맛을 구분해 먹는 재미도 있다. 방어를 해체하는 사람마다 부위는 나름으로 가르는 방법이 다르다. 여의도의 회 코스 전문점 ‘쿠마’의 오너셰프 김민성씨의 방어 해체를 지켜봤다. 이 인물은 도마에 올리는 생선과 해물이라면 항상 대물만을 고집해 ‘여의도 용왕님’으로 통한다. 이날도 말을 걸면 사람 말로 대답도 할 것처럼 크게 자란 대방어를 잡았다.

방어는 가슴과 배 부분에서 위는 등살, 아래는 배 가운데를 대뱃살(배꼽살), 겉쪽을 중뱃살로 가른다. 뒷토막은 다 꼬릿살이다. 거기에 턱 아래의 두툼한 가마살과 볼에 붙은 살을 베어낸 볼살까지로 구분이 된다. 뱃살과 등살 사이 검붉은 살을 구분해 썰어 ‘사잇살’이라고 부르는 집도 많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방어는 육안으로 봐도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 가마살-대뱃살-등살-중뱃살-턱살-꼬릿살 순으로 색이 짙어진다. 지방이야 어느 부위라도 흰살생선에 비하면 많다. 가장 지방이 적은 꼬릿살을 먹어도 입술에 기름이 돈다. 특히 대뱃살의 마블링은 곡물을 먹여 뚱뚱하게 키운 소의 새하얀 꽃등심 못지 않게 자글자글하다. 쿠마에선 방어를 평상시엔 딱 5부위로만 나눈다. 등살, 대뱃살, 중뱃살, 꼬릿살, 가마살 만이다.

사람의 그것과는 달리 어딜 가나 좋은 대접을 받는 방어의 뱃살. 붉은 부분이 중뱃살, 흰 부분이 대뱃살로 한 번 더 나뉜다.
사람의 그것과는 달리 어딜 가나 좋은 대접을 받는 방어의 뱃살. 붉은 부분이 중뱃살, 흰 부분이 대뱃살로 한 번 더 나뉜다.

부위별로도 맛이 달라지지만 숙성에 따라서도 맛이 크게 변한다. 쿠마에서는 방어를 한두 시간 가량만 가볍게 숙성해 쓰고 다음날은 쓰지 않는다. 거의 활어다. 대개의 횟집에서 접하는 방어도 실상 활어가 대부분이다. 숙성하지 않은 방어는 기름의 신선한 향, 그리고 사각거리는 질감이 일품이다. 갓 썰어낸 방어에선 마치 질 좋은 올리브유의 싱그러운 과일향 같은 것이 맴돈다. 단단한 살은 부드럽게 풀어지지만 치아에 기분 좋은 질감을 남긴다. 육질이 단단한 사과를 베어 문 것 같은 사각임이 있다.

반면 합정동의 선어회 전문점 ‘퓨전선술집’ 오너셰프 추권영씨는 방어도 숙성시킨 맛을 더 높게 친다. 신선한 향은 휘발되지만 대신에 단백질이 변성되어 감칠맛이 좋아지고 한결 고소한 맛이 난다. 사각거리는 식감 대신에 숙성회 특유의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나온다. 방어의 크기와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까지도 숙성해서 쓴다. 생선의 크기는 곧 맛, 대방어를 고집하는 것은 이 집도 마찬가지다. 같은 대방어라도 활어는 싱그러워 좋고 선어는 달달해서 좋으니 선택은 사람 나름이고 입맛 나름, 기분 나름이다.

방어회는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소금을 뿌려 먹으면 단맛이 강조되고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로 먹으면 감칠맛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쿠마에서는 작은 새우를 매콤하게 삭힌 홈메이드 젓갈을 권한다. 칼칼한 숙성의 향이 방어의 기름과 잘 어우러진다. 제주도에서는 김과 참기름에 무친 밥, 양념장, 묵은지와 함께 쌈으로 먹기도 한다. 고등어회를 먹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먹으면 물리지 않고 끝없이 먹을 수 있다. 소고기 육사시미 같은 붉은 사잇살엔 소금과 참기름을 찍어 먹어도 잘 어우러진다.

회를 뜨고 난 대가리와 뼈로는 국물을 내도 좋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여기에 찹쌀을 풀어 끓이면 구수한 어죽이 만들어진다. 대구나 우럭으로 낸 맵싸한 탕 국물의 개운함과는 또 다른 각별함이다. 대가리에 소금을 듬뿍 치고 직화에 은근히 구워 먹어도 별미다. 퓨전선술집 추권영씨는 두툼한 살토막에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구워도 잘 어울린다고 권한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방어를 고급 생선으로 칭송하는 일본에서는 심장과 위 등 속의 것을 구이로 먹거나 살을 샤브샤브로 먹기도 한다.

방어는 푸른 등에 은빛 몸통을 가졌으며 볼에서부터 몸통으로 빠지는 노란 옆줄이 특징이다. 농어목 전갱이과 친척인 부시리와 크기나 생김새가 빼다 박았는데 맛이 좋은 철이 정반대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방어의 배지느러미는 가슴지느러미와 거의 같은 일직선상에 자리하며, 부시리는 배지느러미가 훨씬 뒤쪽으로 치우친다. 위턱의 주상악골은 부시리가 둥근 데 비해 방어는 직각으로 날카롭다. 가을이 제철인 잿방어도 있다. 같은 농어목 전갱이과이긴 하지만 몸통이 새하얘서 구분이 쉽다. 일본어 사용 습관이 남아 있는 산지나 시장에서는 방어를 ‘부리’, 부시리를 ‘히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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