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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최저임금과 일자리

입력
2017.07.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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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득세법에서 이자소득, 임대소득과 같은 자산소득에 대해 부부 합산제를 규정한 적이 있다. 그 취지는 부부를 같은 소비 단위로 보아 자산소득을 합산ㆍ과세하는 것이 생활 실태에 부합하고 세금 회피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2년 헌법재판소는 부부 합산제가 혼인한 부부를 독신자에 대해 차별 취급하는 것으로서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헌재 2002. 8. 29. 2001헌바82). 하지만 부부 합산제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재의 논리는 우리 일반인의 상식과 어긋나고 지나치게 단순하다.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까지 고려하여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헌재 재판관들이 상정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복잡하거나 엉뚱한 사고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경제도 비슷해서 단선적인 비용 분석만으로 법제도의 경제적 효과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적용 최저임금을 시급 7,530원으로 의결하였다. 이는 2017년 최저임금 시급 6,470원보다 1,060원(전년 대비 16.4%) 인상된 것이다. 그 영향을 받을 근로자는 463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이 공익위원과 노ㆍ사위원이 모두 참여한 의결을 통해 결정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이 겪는 높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비용 등 불공정 구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점도 마찬가지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높아 고용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염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주장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너무나도 자명한 경제 원칙에 터 잡고 있기 때문에 반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고용률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적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함께 생각하면, 이 비판에 무조건 수긍할 수도 없다. 최근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보면, 최저임금제는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긍정적 효과를 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1999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에서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저임금의 도입과 인상은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2015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실업률이 2016년 2월 기준 4.2%로 1년 전보다 0.6% 포인트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자료도 있다. 독일 시장조사업체인 GFK에 따르면, 2015년 5월 독일인의 소비 성향은 200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계 수입은 1년 전보다 8% 늘었는데, 구매 욕구는 26%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인건비라는 단일 변수로 본다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수요를 감소시킨다는 결론에 “당연히” 다다른다. 그런데 위 연구 결과에 나타난 것처럼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전체 소비 수요가 증가한다면, 그로 인한 혜택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 인상의 대표적인 수혜 대상인 취약계층 근로자는 늘어난 소득을 자신의 동네에서 소비하기 때문이다. 저소득 근로자일수록 늘어난 급여를 어디에 쓸지 이미 알고 있다. 동네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고, 식당과 커피숍에서 친지들과 여가를 즐길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 진작에 기여하여 고용률에 중립적 또는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때때로 한 사회의 미래는 경제학 교재에 나오는 수요 공급의 곡선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인과(因果)와 사람의 선한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 지금은 그걸 믿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할 때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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