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베이징 경찰차 100대 관장 에워싸 관광객까지 전신 몸수색 구글 차단, 웨이보도 통제
지구촌은 추모 열기 홍콩서 15만명 집회 대만 총통, 재평가 요구 성명 유엔ㆍ美 "진실ㆍ권리보장" 촉구 일본도 "인권보장 중요"
4일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철통 검색과 무장 순찰에 포위됐다. 중국공산당 개혁과 민주화의 함성이 메아리 치던 그 광장은 25년 전 군화발에 짓밟힌 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정치적인 것은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눈부신 경제발전 때문에 더욱 숨막히는 공산당 독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날 톈안먼 광장은 광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이 철저하게 봉쇄된 채 하루 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광장 한 가운데는 물론 광장을 빙 둘러싼 곳곳엔 경찰차만 100대 가까이 보였다. 군복과 철모를 갖추고 총으로 중무장한 채 순찰을 도는 무장 경찰들은 물론 일반 경찰과 사복 경찰들도 수시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짧은 머리에 까만 색안경을 끼고 부동 자세로 서 있거나 똑 같은 양복을 입은 채 줄을 맞춰 행진하는 위장 요원들은 어색해 보였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감시견도 대거 투입됐고, 응급차와 소화기도 더 늘었다.
톈안먼에 들어서는 관광객에 대해서는 가방은 물론 몸수색이 실시됐다. 이 때문에 최고 기온이 31도도 넘은 이날 검색대 앞 땡볕에선 1시간 이상 긴 줄을 서기 일쑤였다. 톈안먼 광장과 연결되는 자금성(紫禁城)도 평상시엔 여권이 없어도 외국인이 입장할 수 있었지만 이날은 퇴짜를 맞았다.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과 자원봉사자 등 수십만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이날 베이징에서 큰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넷 통제도 더 심해졌다. 구글 서비스는 이날 중국에서 접속할 수 없었다.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서는 톈안먼, 6월4일, 광장, 탱크 같은 단어 이외에도 5월35일(6월4일의 다른 표현), 8의제곱(64, 즉 6월4일을 의미), 창안제(長安街ㆍ톈안먼 광장과 이어지는 도로), 89(톈안먼 시위가 일어난 1989년), 촛불, 진압(鎭壓)까지 검색 결과가 모두 차단됐다. 언론 매체들도 25년 전 톈안먼 시위와 무력 진압 등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는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저녁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선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고 톈안먼 사건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ㆍ지련회)는 15만명 안팎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했다.
대만 타이베이(臺北) 중정(中正)기념당 앞 자유광장에서도 중국 민주화 촉구 단체인 화인민주서원(華人民主書院)과 대만 학생운동 단체 등이 촛불을 밝혔다. 이들은 톈안먼 시위 강제 진압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반성과 류샤오보(劉曉波) 등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석방 등을 요구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중국 당국이 하루 빨리 이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해, 다시는 유사한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 놨다. 마 총통이 중국 당국에 톈안먼 사건의 재평가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또 언론자유 보장, 법치주의 도입, 인권 보호 및 반체제 인사 탄압 중단 등도 주문했다.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도 별도 성명에서 “톈안먼 사건의 상처는 피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전날 “톈안먼 사건의 진실을 확실하게 규명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중국 정부에 사건 당시 군부의 폭력적인 억압 등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 최근 잇따라 구속된 인권 운동가와 변호사, 언론인 등에 대한 석방 등도 요구했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4일 “미국은 톈안먼 광장의 시위자들이 추구한 기본적 자유를 언제나 지지할 것”이라며 “중국이 그 동안 사회적 경제적으로 진보해온 만큼 이젠 시민들에게 보편적 권리와 근본적 자유를 보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자유, 기본적 인권의 존중, 법의 지배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라며 “이들이 중국에서도 보장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톈안먼 사건을 ‘반혁명 폭란’, ‘폭동’, ‘정치 동란’, ‘정치 풍파’로 결론 지은 중국은 국제 사회와 여론의 재평가 요구에 꿈쩍하지 않고 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성명과 관련, “우리는 미국측이 중국의 사법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며 “중국의 내정에 이러쿵 저러쿵 말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당시 학생 운동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수배 명단 1순위에 올랐다가 미국으로 추방됐던 왕단(王丹)은 이날 페이스북 등에 “중국 공산당 독재가 끝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일무소유’(一無所有)를 불러 저항의 상징이 된 재중동포 3세 록가수 최건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당시 광장은 거대한 축제 같았으며,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믿은 순간이었다”고 회고한 뒤 “현재도 중국의 검열은 매우 심해 뭔가를 쓰기 전에 미리 걱정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