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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구에게 걷어 어떻게 쓸 것인가?

입력
2017.08.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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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채집을 하고 살았던 시절,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모여 살았다. 그리고 농경사회로 가면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되었고 곡식 중 일부를 내어 공동으로 필요한 곳에 쓰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살기가 편해진 데는 공공인프라가 한 몫하고 있으며, 그 기반은 세금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법관 올리버 홈즈는 세금을 “문명사회에 지불하는 대가”라고 불렀다.

세금은 혁명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세금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기폭제였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를 표방한 미국의 독립전쟁도 영국의 과도한 조세부과가 뇌관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세금은 민감한 것이다.

정부의 조세 및 복지정책들이 발표되면서 증세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핵심은 세금을 올리는데 어느 항목에서 누구에게 부과할 것인가이다. 법인세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해외로 기업들이 빠져나간다고 난색을 표하는 입장과 사회보험을 고려한 세부담은 OECD 평균에 비해 낮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불투명했던 기업의 회계관행, 사라져 버린 낙수효과 그리고 상대적으로 꾸준히 올려온 소득세가 있다.

근로소득세에 대해서는 면세자 비율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납부자는 923만명, 면세자는 803만명으로 면세자 비율은 일본의 3배 수준이다. 단돈 천 원이라도 모든 국민이 헌법상 의무로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과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거두어봐야 별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그러나 완전한 개세가 아니라도 국민들이 국가와 사회공동체에 책임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면세자 비율은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모두의 책임을 먹고 자라며 세금은 그 책임 중 하나이다. 효율로만 보는 것은 그냥 잘 거두어서 쓰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공동체는 셈이 아닌 의무의 이행으로 유지되며 가치의 공유로 단단해진다. 선진국들이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납세자(Taxpayer)의 권리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이다.

소득 중에서도 근로소득에 손을 댈 것인가 아니면 부동산 혹은 금융자산 등에 손을 댈 것인가에 따라 갈등상황이 표출된다. 조세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다양한 통계가 있지만 필요한 것은 어느 세원 중 어느 그룹에서 낸 세금이 재정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소한 쪽에서 증세를 받아들이기 쉬우며, 과도한 쪽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쉽다. 종교인 과세 등 새로운 세원 개발도 필요하다. 정치적 이유로 징세가 쉬운 대상만을 찾는 것은 공평과세의 원칙에 어긋난다.

세금을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 중복지로 간다면 중부담이 필요한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불신이다. 크게는 효율성 없는 국책사업과 방산비리, 작게는 복지와 지원금의 부정수급이 그 예이다. 꼬박꼬박 내고도 노후에 받을 수나 있을까 걱정하는 국민연금과 함께, 회사 눈치 보여 병원조차 제대로 가보지 못하는데 건강보험료로 매달 수십만 원씩 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세금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어 나타난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에 대해 시기와 속도 면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방향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한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정치권과 정부가 어떻게 더 균등하게 부담하고 어떻게 더 제대로 쓸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선물처럼 남발되는 조세특례도 옥석을 가려야 하고 법의 이름으로 의무지출을 만들어 놓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정책 재원에 대해 이해관계에 따라 추계치가 수조원씩 다르다면 정보를 공개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민에게 요구하려면 정치권과 정부도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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