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꿈일까 현실일까… 악몽에서 벗어나는 법

입력
2017.10.24 04:40
21면
0 0
현실을 비튼 8편의 악몽을 통해 작가 이유는 말한다. 이 모든 악몽으로부터의 탈출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악몽으로부터 초월하는 초(超)악몽일지도 모른다고. 문학과지성사 제공
현실을 비튼 8편의 악몽을 통해 작가 이유는 말한다. 이 모든 악몽으로부터의 탈출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악몽으로부터 초월하는 초(超)악몽일지도 모른다고.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유의 소설집 ‘커트’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을 악몽의 기록이라고 말할 때, 이 악몽은 다름 아닌 무섭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어가 신발보다 싸면 그게 타이어야? 라고 묻는 일곱 살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이건 진짜 현실이지만, 꿈이라고 열심히 생각”해 정말 꿈이 된 현실이다. 꿈이어야 눈이 딱 떠질 수 있으니까.(‘커트’)

이 악몽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오해와 오독이다. 꿈이 꿈(희망)으로 읽히면서 자다 꾼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버리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꿈꾸지 않겠습니다.’) 애써 꿈이라고 생각해 꿈이 된 것들이 다시 현실로 재현되기에 이른다. 악몽은 끝나지 않고 이 악몽에서 저 악몽으로 옮겨갈 뿐이다.

하루아침에 나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다.(‘낯선 아내’) 그제야 당신은 나를 몰라, 라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채로 만나 결혼했으니 안면인식장애 때문만이라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는 너무 추워 얼어붙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면 진짜로 얼어붙는다. 머리(hair)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 머리(head)를 잘리기도 한다. 잘린 머리(hair)는 계속 자라므로 머리(head)는 다시 잘려야 한다.(‘커트’)

꿈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세상의 결말은 예측 가능하다. 저마다의 꿈이 이루어진 세상은 혼돈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꿈 때문에 누군가의 꿈은 계속 수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꿈에 따라 수정되는 무수한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깃털’에서의 공간이동과 ‘빨간 눈’에서의 복제인간이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내 몸에 담긴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조립된다고 해도 이걸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겠냐는 거야.”(‘깃털’)

이런 상황을 되돌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꿈꾸지 않는 일이다. 매미만 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마법 같이 좁은 방, 공시생과 알바라는 현실, 아예 꿈조차 꿀 수 없는 지질한 청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 때, 비로소 ‘커트’의 나는 막혔던 숨이 트인다. 그제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 출발할 기회가 왔다”고 깨닫는다.

커트는 능동성을 가진 단어이다. 천적의 공격에 자신의 몸 일부를 끊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이 모든 악몽을 커트할 날이 올 것이다. “질기디질긴 기억의 망령은 언제고 부활한다. 하지만 내 손에 가위가 있는 한 겁날 건 없다.”

진짜 현실이 두려워 만들어낸 악몽은 눈을 딱 뜬다고 해서 깨어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꿈꾸지 않겠습니다’의 여진은 필에게 말한다. 초봄, 초여름과는 달리 “초가을, 하면 어쩐지 가을을 초월했다는” 뜻 같다고.

어쩌면 이 모든 악몽으로부터의 탈출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악몽으로부터 초월하는 초(超)악몽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 메시지는 멀리 있어도 선명하게 펄럭이는 깃발 같았다.

하성란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