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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통령의 웃음

입력
2017.08.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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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四書)라고 부르는 책 중에 ‘대학(大學)’이라는 책이 있다. 흔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부르는 내용이 들어 있는 그 책이다. 원래 그 책은 ‘3강령 8조목’으로 된 책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 이 세 가지가 3강령이고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네 가지를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 합치면 8조목이 된다.

대학이란 말 그대로 공인이 되려는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할 지침을 제시한 것으로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지금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군주제와 민주제는 리더의 선출방식만 다를 뿐 그의 통치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잣대는 사실상 이 3강령과 8조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8조목보다 3강령이 더 중요하다.

지금 구치소에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경우 구체적인 범법 사실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이 3강령만 보아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명명덕(明明德)이란 명덕(明德), 즉 공명정대한 마음가짐을 자기 안에 갖춘 다음에 세상을 향해 그것을 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변에 공적 책임과 의무가 전혀 없는 특정 개인을 감싸느라 국가의 중요 기능을 망가트렸다. 이런 경우에 그것은 명덕(明德)은커녕 암덕(暗德)이 된다.

친민(親民)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참, 그에 앞서 친민(親民)의 친(親)을 정확히 번역해야 한다. 기존의 ‘친하게 지낸다’는 말은 원래의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오히려 ‘내 몸과 같이 여기다’라는 것이 친(親)의 본래 뜻에 가깝다. 예를 들어 친구(親舊)는 내 몸과 같이 여기기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친민(親民)은 한 번 더 풀어서 본다면 리더 개인에게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백성들이 힘들어 할 때는 마음 아파하는 것이 우선되고 리더 개인에게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백성들에게 기쁜 일이 있다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것, 이것이 친민이다.

세월호의 비극 때 전직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친민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자신이 직접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미 그의 무언(無言)과 무책임과 무덤덤함을 보면서 속으로 ‘내가 빠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왜 그 문제를 나와 연관 지으려는 거야’라고 되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언행은 이런 생각을 바꿀 만한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은 무슨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이같은 친민하는 마음을 잠깐 갖는 데서 그치지 말고 오래오래 유지하라는 말이다.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대통령은 주변의 사사로움에 머물지 말고 오래오래 국민 전체의 안위(安危)와 행복(幸福)을 생각의 첫머리에 두도록 애쓰라는 뜻이다.

고전의 메시지는 확 뒤집을 때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대학(大學)’의 3강령도 그런 경우다. 명덕을 갖춘 사람이 잘 없었기에 명덕을 밝히라고 한 것이고 친민하는 리더가 잘 없었기 때문에 친민을 강조한 것이며 지어지선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지어지선하라고 한 것이다.

과연 새 대통령이 그 자리에 맞는 합당한 명덕(明德)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부정적 예단이 아니라 아직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실제로 잘 알 수가 없다. 잘 하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요즘 언론을 통해 비치는 대통령의 모습들 중에서 한 가지, 파안대소가 너무 잦은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려가 앞선다. 친민(親民) 때문이다. 대통령의 표정 하나 하나는 그대로 국민의 고단한 삶의 성적표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나라 안팎으로 웃을 일이 그렇게 많은가. 국민의 마음과 대통령의 표정이 적어도 일치할 때 친민하는 지도자라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국민을 먼저 웃게 한 다음에 웃으면 지어지선한 대통령도 보게 될 것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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