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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섯 발톱 용의 승천

입력
2017.05.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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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핀다. 나무나 꽃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바람의 힘을 빌리거나 벌 나비의 날갯짓의 도움을 받아야 수분(受粉)할 수 있다. 바람에 잘 날리는 꽃가루를 준비하거나 벌 나비를 유혹하려는 향기와 달콤한 꿀과 화사한 꽃 모양을 뽐내야 한다. 절벽 위의 꽃은 그래서 더욱 화려하고 향기는 강렬한 것이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종족을 이을 수 없는 절박한 생태계와 우리 삶은 닮아 있다.

기후변화로 봄 가뭄은 일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전국이 비에 젖었다. 신록예찬의 숲 향기도 가슴 벅차게 차오른다. 숲에는 숲 향기가 있다. 초록의 나무 향기와 꽃 향기가 어울려 내는 오묘한 합창이 그것이다. 계수나무와 대왕참나무는 스스로 향기를 낸다. 숲을 찾는 발품을 들여야 삽상한 공기를 만나고 숲에 안긴다는 차분한 마음가짐이 향기를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말 없는 나무들이 모여 거대한 숲을 만든다. 그 숲 향기 속에서 말 없는 촛불들이 모여 활화산을 만들 수 있음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민주주의를 애타게 갈구하던 촛불의 대장정이 끝난 희망봉에 문재인 대통령이 큰 나무처럼 섰다. 얽히고설킨 외교문제나 권력을 사유화하는 찌꺼기의 민낯들이 아직도 비겁하게 가로 막는다. 산림이 잡목으로 우거져 생태계를 위협하면 자연적으로 일어난 산불이 대청소를 한다고 한다. 새 시대를 준비할 씻김굿 같은 산불이라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

가까이에 국운상승의 기운을 담보하는 상징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상서로움을 전하고 싶다. 시민이 못난 권력집단을 징치한 비상시국으로 열 달을 앞당겨 떠맡은 숨 가쁜 국정의 소용돌이를 늠름하게 헤쳐 나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천단(天壇)에 올라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대향로를 참배하러 부여박물관으로 달려갔으면 싶다. 그 찬란한 대항해를 떠났던 선조들의 기상의 기(氣)라도 받으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상징은 그 존재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대통령의 문장(紋章)인 상상 속의 봉황이 여의주를 물고 우주를 향한 비상을 준비하는 대향로의 모습이 그것이다. 향로를 받치는 상상 속의 영물인 용의 힘찬 용틀임은 또 어떠한가. 그리고 지축을 박차고 세상을 움켜잡는 듯한 다섯 발톱을 가진 그 용의 기운을 받았으면 싶다. 중국 천자를 상징하는 용의 발톱이 다섯, 우리 임금은 넷, 일본 왕은 셋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 대향로는 24년 전인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1,300년 만에 원형 그대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문 톱뉴스로 실린 대향로의 출토 당시 컬러사진은 살아 숨 쉬는 모습으로 나에게 화인(火印)되었다. 이 불덩이 같은 거대한 연꽃과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진흙 뻘 속에 잠자던 신화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역사의 시간을 신비롭게 묶어 두었던 봉인(封印)이 어느 날 갑자기 주술처럼 풀렸기 때문이다.

그 아우라 품에라도 안기고 싶어, 힘들고 과분했지만 실물크기 복제품의 대향로를 품게 되었다. 24년 동안 출판사 사무실 책상 곁에서 봉황의 날갯짓처럼, 불 뿜는 용의 용틀임처럼, 봉래산의 신선 같은 유유자적한 안온함으로 나를 지켜준 수호천사였다.

이제 대향로를 우리 수목원에 고졸하게 완성한 책박물관으로 옮겼다. 40년 가까이 지성의 열풍지대에서 꿈과 땀으로 일구었던 책들을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담아 둘 박물관이었으면 싶다. 아직도 봉황이 깃들기에는 부족한 숲일지도 모른다.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니 화려한 비상의 꿈은 계속해야 한다. 오늘은 그 대향로에 향을 피울 일이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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