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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만 강화하면 뭐하나, 매일 주의보ㆍ경보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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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만 강화하면 뭐하나, 매일 주의보ㆍ경보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입력
2018.01.21 18: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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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대책 총체적 문제

오전ㆍ오후로 예보 세분화하고

대기환경 권고 기준 수정…

측정소도 위치 낮춰 설치 예정

“대기오염 개선 없이 기준 높이면

매일 주의보ㆍ경보 속에 살게 돼

시민 불안ㆍ공포 이어질 수 있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한 가족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고 있다. 이날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는 오전까지는 '보통'수준을 보이다 오후부터 높아져 '매우 나쁨'수준까지 나타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한 가족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고 있다. 이날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는 오전까지는 '보통'수준을 보이다 오후부터 높아져 '매우 나쁨'수준까지 나타냈다. 연합뉴스

토요일인 20일 하루 종일 하늘은 잿빛이었다. 오후 9시 서울 미세먼지(PM10)는 1㎥ 당 216㎍까지 치솟았고, 영등포구의 경우 무려 293㎍을 기록했다. ‘매우 나쁨’ 기준이 151㎍ 이상이니, ‘매우 나쁨’ 중에도 극심하게 나쁜 날이었다. 올 들어 최악이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의 기준이 되는 초미세먼지(PM2.5) 역시 같은 시간 기준 서울(150㎍) 인천(137㎍), 경기(154㎍) 모두 ‘매우 나쁨’(101㎍ 이상)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이날 올 들어 세 번 발령됐던 비상저감조치는 발령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준 강화한다는데…

반면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던 지난 15일 오전 막상 서울, 경기, 인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보통’(16~50㎍) 에 머물렀다. 오히려 그 다음날인 16일 비상저감조치는 해제됐지만 초미세먼지는 ‘나쁨’을 기록했다.

이런 ‘청개구리 발령’은 당일(16시간) 초미세먼지가 '나쁨'을 기록하고 오후 5시 기준 다음날(24시간) 역시 '나쁨'으로 예상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 아무리 다음 날 ‘매우 나쁨’이 예상된다고 해도, 당일 미세먼지 상황이 괜찮다면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연일 이런 문제가 지속되자 정부도 뒤늦게 기준 강화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21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검토하는 카드는 하루 단위로 하는 초미세먼지 예보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는 것. 오전에는 괜찮다가 오후에 나빠지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적절한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상저감조치의 주 내용이 차량2부제 등 하루 종일 적용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외려 더 큰 혼선만 부를 공산이 크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대기환경기준도 손을 보겠다는 방침이다. WHO는 2005년 미세먼지 잠정목표 4단계를 권고했고, 한국의 대기환경기준은 2단계 잠정목표(PM2.5기준 일평균 50㎍)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는 상반기 내 현재 ‘나쁨’ 기준을 2단계(일평균 50㎍)에서 3단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일본(35㎍) 수준으로 높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90㎍이상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던 초미세먼지 주의보의 기준 역시 70~80㎍으로 낮추는 것도 고려 중이다.

기준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대기환경기준을 강화하면서도 비상저감조치 발령 기준은 손 대지 않을 방침이다. 비상저감조치가 너무 자주 발령되는 건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의보 기준을 강화하는 것 역시 호흡기질환자나 어린이, 노인 등의 옥외활동과 외출금지 등 행동요령만 있는 것이어서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대기오염이 당장 개선되지 않는데 기준만 강화하면 우리는 매일 주의보, 경보 속에서 살아야 하고, 이는 시민들의 불안이나 공포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지 나흘째이자 올해 세 번째로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정문 근무자가 마스크를 쓰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지 나흘째이자 올해 세 번째로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정문 근무자가 마스크를 쓰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멍 난 예보, 단편적인 대책

더 중요한 건 63%에 머무는 고농도 미세먼지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현재 높이 20m가 넘는 곳에 측정소가 설치되어 실제 미세먼지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의 대기오염 측정망 설치·운영 지침 기준 측정소 높이는 사람이 호흡하는 높이인 1.5~10m 사이로 규정하고 있지만 2016년 말 기준 측정소 264개 중 이 규정을 지킨 곳은 46개(17.4%)에 불과했다. 실제 미세먼지 ‘나쁨’ ‘매우 나쁨’인 날은 예보된 날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동측정차량을 이용해 측정값을 보완하고 앞으로 5년 내 20m가 넘는 전국 미세먼지 측정소 20곳의 위치를 낮춘다는 방침이지만, 당장의 대책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국내 미세먼지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미세먼지 자료가 공유되고 있지 않는 상황의 개선도 요원하다. 겨울철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 중국의 영향은 60~80% 수준. 비상저감조치 등을 통해 국내 요인을 일부 억제한다고 해도 바람 한 번만 불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지언 팀장은 “중국은 이미 미세먼지와 관련해 전문가를 육성하면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외교에서도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비상저감조치가 서울과 인천, 경기에만 해당되고 충정지역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충청지역에선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수도권에서만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시행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더구나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려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환경부와 서울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국내 3개 한림원이 최근 발표한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적인 이해에 바탕을 두지 않은 단편적인 배출원 관리 만으로는 미세먼지 농도를 줄이기 힘들다”며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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