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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저더러 양촌리 살인미소래요"/늦바람 인기로 제2 연기인생 "응삼이" 박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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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저더러 양촌리 살인미소래요"/늦바람 인기로 제2 연기인생 "응삼이" 박윤배

입력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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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가 끝나면서 사람들은 '응삼이'의 인생도 종을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은 '응삼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응삼이'가 제 2의 연기 인생을 맞고 있다. 아주 조용하게, 조금은 위력적으로. 22년간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종영 뒤 양촌리의 영원한 노총각 응삼이 역을 맡았던 박윤배(51)가 가장 확실하게 뜨고 있다. 응삼이는 종영 직전 가까스로 상봉댁(이숙)과 결혼하지만, 그 동안 제 짝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 온 비운의 농촌 총각이다. 농촌 총각의 설움을 대변하면서 웃음을, 때로는 연민을 자아냈다.박씨는 30년 연기 인생 중 22년을 응삼이로 살았다. 응삼이는 곧 박윤배였다.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고두심 김지영 등 쟁쟁한 신·구 연기자에 가려졌지만 전원일기에는 그의 30·40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원일기 종영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할 만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전원일기 종영 뒤 더욱 바빠졌다. 9대 1 가르마를 한 '깻잎머리'에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각종 교양, 연예오락 프로그램 출연자로 종횡무진한 그는 '억수탕' 이후 6년만에 영화에 출연한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마루치 아라치'(가제)다. 인터넷에 생애 처음 팬클럽도 생겼고, 조만간 매니저도 둘 예정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

생애 처음 열린 팬클럽 행사

"인터넷의 '아이(i)'자도 모르고, 채팅이 뭔지도 모르는 저를 위한 인터넷 팬클럽이 생겨 2,416명의 회원이 가입했습니다. 오늘 저를 보기 위해 여러분이 강원도와 대전, 전북 정읍, 전남 여수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 살다 보니 농사꾼 박윤배에게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싶네요."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음식점. '전원일기 박윤배 응삼이 팬클럽'(cafe.daum.net/Farmer) 회원 20여 명이 준비한 자리에 박씨가 초청돼 연신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개똥이 아빠 이창환, 복길이 엄마 김혜정, 종기네 이수나, 양촌리 할아버지 정대홍·홍민우씨 등 동료 연예인과 전원일기를 연출한 권이상 PD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응삼씨는 작은 거인이에요. 마음 씀씀이가 크고 언제나 남에게 관대했어요. 저 나이에 팬클럽 생긴 건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 아닌가요." 이수나씨가 팬들 앞에서 박씨를 추켜세우자, 권이상 PD도 "응삼씨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늘 애를 먹였는데도 그는 언제나 촬영에 적극적이고 욕심이 많았다"고 칭찬했다. 한 방송국의 신입 PD는 "어릴 적부터 일로 바쁜 아버지보다 응삼이 아저씨에게 더 친근감을 많이 느꼈다. 그 이후로 줄곧 팬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지방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50대 사업가는 즉석에서 CF 제의도 했다. 1980년 전원일기 첫 회 제목이 '박수칠 때 떠나라'였지만, 박씨는 떠난 뒤에 더 많은 박수를 받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유있는 인기

그가 시청자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전원일기 종영 이후 그의 개인사가 알려지면서. 그의 어머니는 1990년 치매와 노환으로 쓰러졌고, 3년 뒤에는 아내와 헤어졌다. 노모의 병 수발과 두 아이의 육아가 박씨에게 남겨졌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 먹었어요. 아이들이 예민할 때라 '전원일기'에만 전념했고, 촬영이 끝나면 집에 와서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드려야 했죠. 그러나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매스컴을 통해 사정이 알려진 뒤 최불암 선배가 그러더군요. '선배로서 할 말이 없다'고."(그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박씨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73년 MBC 공채 6기로 데뷔했다. 임채무, 유인촌 등이 동기생이다. 전원일기는 그에게 누구보다 애착이 갔던 작품이다. 박씨는 "나는 너(전원일기)를 꽃 상여 태워 보냈다. 뒤돌아서는 나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고 했다. 신발 벗고 논바닥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외모 때문에 떠안아야 할 약점을 덮기 위해 '남보다 두 배 노력하겠다'는 자세로 버텼다. "작가인 김정수 선생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아셨는지, 농촌총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응삼이의 극중 스토리가 바로 제 얘기였어요. 웃음보다 한숨으로 이 세상을 더 많이 살아왔다고나 할까요. 전원일기 하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그는 '응삼이'가 전원일기 종영 이후 오히려 뜨고 있다는 게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고 했다. 가족과 전원일기 외에는 한눈 팔 겨를조차 없었던 지난 세월을 보상 받고 싶어 섬으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던 그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도 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MBC '우리시대'에 출연한 뒤, 어지간한 휴먼다큐 방송에 모두 나왔고 각종 예능·교양 프로의 섭외 요청도 줄을 잇는다. 최근에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브레인서바이버 코너, SBS '헤이헤이헤이'(한약을 잘 못 먹어 늙어보이는 76년생(!)으로 나왔다) 같은 젊은층 대상 프로에도 출연했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잠자리에 들면서도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응삼이라고 불렀지, 제가 박윤배라는 걸 다들 몰랐어요. 이젠 제 이름을 알아주니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좀 더 젊어서 떴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왜 없겠어요. 그래도 좋아요. '응삼이의 살인미소는 김재원의 살인미소와 맞먹지만, 더 순수하다'고 말하는 팬들이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영화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가정을 충실히 꾸려나갈 겁니다. 남은 인생을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수 있는 반려자만 구한다면 방송이 정말 내 품안에 들어올 것 같아요. '응삼이 아저씨 장가보내기 추진위원회' 여러분들이 꼭 해결해 주시겠지요?"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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