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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입력
2016.05.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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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오월을 보내며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정한아 장편소설 ‘리틀 시카고’는 기지촌에서 자라는 아이의 이야기다. 주인공 소녀 선희는 자기 동네를 취재하러 온 방송국 피디에게 아저씨의 꿈은 뭐냐고 묻는다. 피디는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은 이 골목에 관한 다큐를 잘 만드는 게 꿈이라고 대답한다. 다시 선희가 묻는다. “그럼, 아저씨는 우리 골목 때문에 숨도 못 쉬게 마음이 아픈가요? 제가 아는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

미군들이 골목을 떠나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떠난다. 아이는 비어가는 동네를 바라보며 이 어둠과 고요가 끝난 뒤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아이는 이 골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다짐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많이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하고서야 진짜 꿈이 뭔지 아이는 알게 될 것이다.

또 한 명의 야무진 아이가 있다. 은희경 장편소설 ‘새의 선물’의 열두 살 소녀 진희는 세상의 비밀을 보았고 그래서 세상의 약점을 잡고 있는 아이다. 관찰력이 뛰어난 진희는 많은 일을 보고도 모르는 척 넘어간다. 약점을 잡힌 어른들의 세상은 조금씩 진희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어른들은 숨길 진실이 많고 내세우고픈 거짓이 많다. 그럼에도 그런 어른들의 세상이 적당한 온기를 갖고 있으며, 우리가 울고 웃으며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아이는 또한 알아간다.

진희는 당돌하게도 열두 살에 이미 세상을 알아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 어른이 된 진희는 ‘지금도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라고 말하며 어릴 적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여전히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위선과 악의를 배워가며 군인은 애인을 구하고 뜻밖의 재난은 이내 잊혀지고 반복된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진희의 세상인식에 나도 깊이 공감한다. 세상은 변화하는 듯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거쳐 왔던 열두 살의 맑은 시선 이후로 더 알아낼 세상의 비밀이 있었을까 싶다.

한편 이 당돌한 아이들은 커가면서 김애란의 단편소설 ‘서른’에 비친 청춘의 모습을 통과하기도 한다. 학자금 대출로 시작된 채무가 어떤 일을 해도 해결되지 않아 잠시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사회초년생 주인공. 그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낮게 말한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이 시대 청춘의 모습을 이토록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김애란의 소설이 세상을 고스란히 잘 담아내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데, 세상이 더 끔찍해져서 이런 소설을 읽기 주저될 때도 있다. 그럴지라도 나는 다시 내 속에 선희와 진희를 불러들인다. 그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어진다. 문학은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최근 어느 중학교에서 ‘새의 선물’ 노래를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너희가 보는 세상이 뉴스가 보여주거나 어른들이 말하는 세상보다 정확하다.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비극적 결론을 갖고 살 필요는 없다. 진희의 인식을 토대로 선희의 꿈을 꾼다면 너희가 바라는 세상이 될 거다. 지금 갖고 있는 세상을 보는 눈을 잘 지켜내라. 문학은 그 순수한 세상인식을 지켜나갈 힘을 제공해줄 거다. 세상이 자꾸만 만들어 내는 거짓을 밀어내고 더 많은 진실을 찾아내도록 하자. 그러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아이들은 진희처럼 눈을 반짝였다. 모처럼 나도 열두 살 진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 시간이었다. ‘리틀 시카고’의 선희처럼 몸이 살짝 아플 것 같은 조짐도 보였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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