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 협정문 읽은 뒤에 "한국 정부 협상 요구 불가능" 63%
"日 민간 모금 통한 보상금에 피해 할머니 거부" 정답은 83%
“칼을 찬 군인이 물었습니다.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그는 손을 들지 않은 여성의 머리와 발을 잡아 못 박힌 판자 위에 굴렸습니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너덜거렸습니다.”(만화 ‘문신’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옥선 할머니의 증언)
이처럼 몸과 영혼이 처절하게 짓밟히는 피해를 남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 차원의 보상과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다. 더욱이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에서는 오히려 관계 악화를 야기한 걸림돌로 부상했다.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은 위안부 제도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등 역사 왜곡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정상회담은 없다는 메시지를 밝혀왔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가 55명(국내 50ㆍ해외 5명)만 남아 문제 해결은 시급한 상황이다. 한국일보가 한국과 일본, 중국, 네덜란드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지 찾아본다.
한국일보가 수도권 지역 중고생 613명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문제풀이 방식으로 평가한 결과 우리 미래세대는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문제의 현실에 무관심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이 출제, 감수한 위안부 관련 10개 문항을 풀어보도록 한 평가에서 청소년들은 일본 정부가 국가 차원의 배상과 사과를 하지 않은 사실은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1995년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 사업으로 조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에 대해 피해 할머니 대부분이 거부한 이유가 국가책임의 배상이 아니라는 점이라는 데에 10명 가운데 8명(82.5%)이 정답을 말했다. 이 기금은 민간 모금을 통한 위로 차원의 보상금으로, 문제 해결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의 근거가 돼야 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일본의 논리가 상당히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문의 일부를 읽고 답하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다시 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해한 경우가 63%나 됐다. 이 협정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이 없다며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을 하지 않는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1년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게을리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었다. 또 일본군이 위안소를 만든 이유가 아닌 것을 고르는 객관식 문항에서 정답률은 64%에 그쳤다. ‘조선여성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문항이 맞다고 생각한 학생이 36%나 됐던 셈이다.
김학순 할머니에 대한 문항은 가장 정답률이 낮았다. 김 할머니는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가운데 가장 먼저 공개 증언을 해 이 문제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학생은 10명 중 2명(23.1%)에 불과했다. 당시 김 할머니의 증언을 채록했던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 문제가 꼭 풀어야 하는 숙제임을 감안할 때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래세대의 관심도를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상규명과 공식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는 집회(수요집회)의 요일을 묻는 질문에는 34%가 잘못된 답을 기재했고, 2011년 12월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평화의 소녀상)을 묻는 문항에서는 55% 가량이 틀렸다.
전문가들은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약 2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조선 여성들은 일제에 의해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제도 등의 전선에 일본군 위안부로 보내져 갖은 수난과 희생을 겪었다’는 정도의 사실 소개에 머물고 있다. 한국일보가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상식 퀴즈에 참가한 A고교 교사는 “출판사별로 2줄에서 많게는 1페이지가 전부”라며 “역사 시간에 배우는 것만으로는 관련 상식을 취득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순주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며, 여성 인권과도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미래세대가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이라며 “꼭 역사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이 주제와 연결해 탐구 과제를 내주거나 특강을 통해 문제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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