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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나이를 먹는 속도

입력
2017.03.3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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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권이 걸린 경우를 제외하면 보수적인 집단은 내부 분쟁을 적게 겪지만, 보다 진보적인 집단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갈등과 싸움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전자의 구성원들은 사회의 규율이나 질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후자의 구성원들은 거기에 항상 의문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좋다. 각자가 가진 의문에서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온다면, 같은 집단 안에서도 견해 차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수적인 사람들은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기에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진보적인 정당이나 운동단체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지만, 그 문화가 복종과 위계질서를 낳는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연장자를 공경하기보다는 공격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하대하는 일이 생기면, 진보적인 집단에서는 더 많이 진보적일수록 큰 소란으로 번지곤 한다.

한편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모든 입장의 가장 좋은 부분을 찾아내어 머릿속에서 뒤섞는 일을 좋아한다. 보수적인 사람들로부터는 연장자의 생물학적 나이 때문만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가 많기 때문에 그들을 공경한다는 사고방식을 배운다. 또한 진보적인 사람들로부터는 세상에는 서로 다른 계급과 집단들이 있으며 모든 일은 세상이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사고방식을 배운다. 양쪽을 조합함으로써 나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이를 먹는 속도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 않으며, 저마다 위치나 하는 일에 따라 다르다는 깨달음이다.

쉽게 말해 서른 세 살의 축구선수가 있다면 우리는 그 선수가 이미 충분한 업적을 쌓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선수의 부상을 치료하러 온 의사도 서른 세 살이라면 우리는 의사가 너무 젊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마흔 살의 석사과정 학생이 있다면 우리는 그 학생이 이미 다른 공부를 하였거나 많은 사회 경험을 하여 넓은 안목을 가졌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도 마흔 살이라면 우리는 그 교수가 너무 젊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른 두 살의 전기 기술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녀)가 대단한 장인이며, 나아가 후배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기가 어렵다. 사실인즉 노동계급의 상당수는 이십 대 중반, 이르게는 십대 후반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더욱이 노동시장에서 경력 없는 비숙련 노동자의 고용은 많아야 서른 살 무렵에 끝나므로, 그 나이를 넘긴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과 재주를 익혔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동자가 속한 회사의 경영자도 서른 두 살이라면 우리는 그 경영자가 너무 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경영자는 이제 갓 학위를 마쳤을 테고, 회사 운영의 경험이 거의 없는 신출내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경영자가 노동자와 나이가 같거나 혹은 조금 더 많다 하여도, 마땅히 자기 회사의 노동자를 공경하고 예우해야 이치에 맞다.

어쩌면 진보 정당들에서 당원 간 세대갈등이 일어나는 까닭은 나이를 먹는 속도가 가장 다른 두 집단이 공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쉰 살의 정당 정치인은 매우 젊은 축에 속한다. 그(녀)를 말하려면 패기 넘치고 왕성하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한편 스물 여섯 살의 현장활동가는 꽤 원숙한 편에 속한다. 그(녀)를 말하려면 지혜롭고 노련하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진보 정당의 청년활동가들은 당 간부를 만나면 다짜고짜 반말을 해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나는 청년활동가들이 나이 많은 정당인의 흡연 습관이나 머리 모양을 나무라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그게 바로 어린 취급을 받는 활동가들이 더 깊은 관록을 갖추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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