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산 제2구간 가보니
경찰 범죄예방팀 “안전도 낙제점”
등산로서 샛길 들어서자 인적 뚝
그나마 초입에 CCTV 있지만
눈에 안 띄어 예방기능 못해
비상벨 없는 간이화장실도 위험
“산책로 모든 구간에 폐쇄회로(CC)TV가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아 범죄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3일 오전 서울 관악산 일대 산책 코스를 둘러 본 관악경찰서 범죄예방진단팀(CPO) 수사관들은 범죄 안전도를 묻는 질문에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주말에만 3만 명이 몰릴 만큼 시민들이 자주 찾는 길이지만 4.7㎞의 산책로를 지나는 동안 CCTV는커녕 범죄 위험을 경고하는 변변한 표식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최근 서울 수락산 등산로에서 발생한 60대 여성 피살 사건을 계기로 등산로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주요 도보길이 범죄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관악서 범죄예방진단팀 및 관악구청 관계자들과 집중 점검한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서울대입구~국제산장아파트)도 치안 감시망에서 벗어난 취약 요소가 수두룩했다. 둘레길은 서울시가 2011년부터 서울 외곽길 157㎞을 이어 만든 산책로로, 외국인관광객들도 즐겨 방문하는 도보 여행의 명소다.
진단팀은 두 시간 남짓 둘레길 안전도를 살핀 결과 범죄 예방 효과가 큰 CCTV 등 방범시설이 크게 부족한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서울대입구 관악산관리소를 출발해 등산로를 따라 600m쯤 걷다 보니 오른편으로 둘레길 입구가 보였다. 폭이 넓은 등산로와 달리 둘레길은 비탈길로 이어져 통행하는 인적이 드물었다. 진단팀 민성화 경장은 “주요 코스마다 구조ㆍ구난에 필요한 위치번호 표지판은 있지만 범죄 예방 기능을 할만한 시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락산 살인 사건의 경우도 범행 현장 인근에는 CCTV가 없었던 탓에 수사 초기 피의자 검거가 어려웠다. 실제 관악산을 비롯해 수락산 인왕산 아차산 등 서울 주요 등산로에 설치된 CCTV 대부분이 입구에 몰려 있어 위험요소를 제 때 감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관악산 공원부지에 산불 감시용 등 총 84대의 CCTV가 가동 중이나 둘레길을 감시하는 CCTV는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등산로 입구에 밀집된 CCTV는 존재를 알아채기 어려워 범죄 예방 효과가 부족했다. 민 경장은 “CCTV는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해야 예방 효과가 배가된다”며 “CCTV 기둥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바닥에 직경 5m 정도 크기 원을 그리는 등 영역표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책로를 지날 때 이따금 눈에 띄는 샛길이나 간이화장실 역시 범죄 취약장소로 지목됐다. 서울시와 구청 측은 숲길체험지도사를 채용해 둘레길 코스 관리를 맡기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은 순찰ㆍ방범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진단팀의 평가다. 곽창용 관악서 생활안전과장은 “산 속 화장실은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보안등과 비상벨 등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자체의 보안시설 확충 노력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2012년 제주 올레길에서 40대 관광객이 살해당한 사건 이후 정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 산책로도 CCTV 설치가 가능한 보행자길에 포함시킨 방안을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둘레길 관리를 총괄하는 서울시는 CCTV 등을 활용한 범죄 예방 대책 마련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시 관계자는 “둘레길이 워낙 길고 면적도 넓어 구간마다 CCTV를 설치하려면 수 천대가 필요한데 예산 등 문제로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산책로가 시민의 안전한 휴식처가 되기 위해선 CCTV 설치뿐 아니라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현장 출동을 일원화하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며 “경찰과 지자체가 공조해 종합적인 예방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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