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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문화를 만났을 때] (4) 역사를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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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문화를 만났을 때] (4) 역사를 재구성한다

입력
2006.07.2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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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사라지고 수수께끼만 남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자외선을 비추자 보이지 않던 흔적이 드러난다.

잉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이런 장면처럼 우리는 알지 못하는 과거의 역사와 살고있다. 그러나 기록이 없어 몰랐던 사실들이 새로운 과학기술로 재구성되고 있다.

●목조건축의 나이-나이테

충북 영동의 영국(寧國)사는 통상 대웅전 벽면과 탑의 면이 나란한 다른 절들과 달리 건물과 탑이 15도쯤 틀어져 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역사 기록은 없다. 2005년 재건을 위해 건물을 해체하자 그 비밀이 밝혀졌다. 건물을 해체해 옮겨내자 탑과 나란한 방향의 숯 기단과, 현재 건물방향의 나무 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북대 박원규 교수는 나무와 숯을 조사해 “영국사는 1674년 탑과 평행하게 지어졌으나 불 탄 뒤 1703년 재건하면서 방향을 15도 틀었다”고 결론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바로 숯과 나무 기단의 나이테를 조사해 각각 1674년과 1703년에 벌채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과학기술부가 지정한 목재연륜소재은행의 은행장인 박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800년간의 소나무 나이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1200년대 이후 잘린 소나무라면 언제 벌채 됐는지 알 수 있다.

태양의 활동에 따라 나무가 잘 자라는 해와 조금밖에 못 자라는 해가 있고 이에 따라 나이테 간격이 넓고 좁아지는데, 30~50년간의 나이테 패턴을 비교하면 자라고 벌채된 시기를 알 수 있다.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이 최대 100년의 오차가 있는 반면 이 연륜측정법은 충분한 나이테만 확보할 수 있다면 오차가 거의 없다. 건축에 쓰인 나무는 대체로 벌채된 해에 사용되고, 가장 바깥 나이테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창경궁 통명전(왕비의 침전)이 온돌이 아닌 마루 바닥인 이유도 밝혀졌다. 사학자들은 궁궐도면인 ‘동궐도형’에도 온돌방으로 표기돼 있다는 점을 들어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온돌방을 마루바닥으로 개조했으리라 추정했다.

박 교수팀이 마루 귀틀(마루청을 끼우는 굵은 나무)의 연륜을 측정하자 아니나 다를까 1913년 벌채된 나무였다. 박 교수는 “한일합방 후 궁궐을 사무실로 쓰기 위해 마루를 깔았다는 추정이 연륜측정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진품확인에도 쓰여

연륜측정은 건축시기 설정뿐 아니라 양식의 변화, 진품 확인에도 유용하다. 우리나라에 얼마 없는 중층(重層) 목조건물인 법주사 대웅전에서 박 교수팀은 두 가지 양식 즉 내림주먹장(기둥에 끼우는 보의 머리부분이 짧고 빠지지 않도록 쇠걸이를 덧대는 방식)과 통맞춤(보가 기둥에서 잘 빠지지 않도록 끼우는 머리부분을 길게 하는 방식)을 발견했다. 두 가지 보는 각각 1618년과 1830년 벌채된 나무였다. 즉 200년이 지나면서 내림주먹장이 통맞춤 양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외국에서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위조를 잡아낸 적이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뉴욕의 악기경매에서 300년 된 것이 354만 달러(약 33억원)에 팔린 적이 있는 명품이다. 자연히 위조도 많다. 하지만 악기전문가는 감쪽 같이 속여도 20세기에 잘린 나무로 만든 사실이 드러나 가짜임이 들통나기도 했다.

●적·자외선이 조명하는 붓터치

예술작품에서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적외선과 자외선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천주현 연구원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시대 불화 ‘시왕도(十王圖)’를 보존처리하면서 그림 오른쪽의 송제대왕(宋帝大王) 얼굴이 원래 왼쪽을 행해 있다가 정면을 보도록 고쳐 그려진 사실을 알아냈다.

그림에 적외선을 쪼이자 왼편을 향한 밑그림이 드러난 것이다. 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장파장이어서 물질이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특히 먹의 탄소성분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외선 역시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과거의 흔적을 드러낸다. 자외선을 비추면 안료의 성분에 따라 형광빛으로 반사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종마다 다른 지방 성분

유적이나 유물에 남은 지방성분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동·식물, 그리고 생물의 종에 따라 지방을 구성하는 지방산과 스테롤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구석기시대 동굴 바닥 전체에서 발견된 지방성분이 양털에서 유래한 것임을 확인, 구석기인이 이미 양모로 된 의복을 입었다고 추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전혜선 연구원은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등잔의 기름을 분석한 결과 7개 등잔 중 5개가 동물성 기름, 그 중에서도 사슴기름이 쓰인 것을 확인했다. 전 연구원은 “등잔기름 분석을 더 확대한다?지배계급은 불빛이 좋은 동물성 기름을, 하층민은 질은 떨어지지만 구하기 쉬운 식물성 기름을 썼다는 추정을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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