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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 대통령 퇴진이 끝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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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 대통령 퇴진이 끝 아니다

입력
2016.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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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 정적이 감돌고 있다. 고영권 기자
2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 정적이 감돌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6년 겨울 우리는 분명 역사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민주주의 근본을 훼손한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위임해 준 권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위해 190만명이 광장에 나왔고, 그 결과 대통령이 물러났다고. 어느 민간인의 기막힌 국정농단은 훗날의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또 한 걸음 진전하게 된다.

그러나, 찬물을 끼얹는 말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그 날 이후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여자나 비극적 유년을 경험한 사람을 찍지 않는 게 해법도 아니다. 트럼프를 능가할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폼 나는 촛불집회’는 한 때의 추억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광장의 민의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헌 논의가 대통령 거취 결정을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개헌은 필요하다. 장기 군사독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헌법에 못박은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다 임기 말 레임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고질적 상황을 낳은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에 독립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등 시대에 맞게 손봐야 할 헌법 조항들이 적지 않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입법부를 키워서 입법-사법-행정부의 균형을 맞추는 일 역시 우리나라의 민주적 발전에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이 무색할 만큼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이 비대하다. 국회의 예산ㆍ결산 심의권이 막강한 듯 보이지만,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부가 편성한 예산 항목을 삭감하거나 일부 조정하는 것뿐이다. 국회가 사업을 신설해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 국가인데도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부여해 정부는 무수한 법률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정부는 모법의 취지에 어긋나거나 위임 범위를 넘어선 시행령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하기도 한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대표적이다. 특정 사업이나 부실기업 구제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거나, 특정 기업과 관료가 결탁해 이권을 챙기는 사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거나, 규제나 감독이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의 다수가 정부가 하거나 하지 않은 일 때문이다. 3부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국회의 전문성을 키우는 법적 제도적 정치적 장치가 필요하다.

3차 담화 발표 29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3차 담화 발표 29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또 한가지, 어쩌면 가장 시급한 것이 검찰 개혁이다. 검찰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기소독점권을 견제함으로써 검찰이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견(犬)찰’이라는 비아냥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최근 박 대통령의 혐의를 적극 밝혀냈으나, 사건이 처음 접수됐을 때만 해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태가 비선실세의 전횡을 밝혀낼 기회가 될 수 있었음에도 검찰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하게 문건 유출 책임자만 기소했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죄를 밝혀낼 수도, 덮을 수도 있다는 것은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만 봐도 확연하다. “수사나 징계 대상이 안 된다”던 진 전 검사장은 나중에 130억원대로 불어난 비상장 넥슨 주식(4억원 상당)을 사업가 친구로부터 공짜로 받아내면서 이를 숨기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현재 재판 중이다. 청와대가 검찰을 장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대기업의 팔목을 비틀어 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하거나, 민간기업의 경영진 인사에 개입하는 일은 가능했을까.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그리고 기소할 수 있는 권한보다 기소하지 않는 권한을 견제해야, 권력형 게이트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연대감으로 찬란히 빛나던 겨울 광장의 촛불은 영원하지 않다. 제도가 담보하지 않으면 광장의 열기는 사라지고 만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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