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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일상을 견딘다는 것

입력
2016.03.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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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에서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끔찍한 가해자가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를 얻은 평온한 얼굴로 피해자 어머니를 대하는 대목은 지금 돌이켜도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소설에서 펼쳐진 기막힌 상황이 더 전율스럽고 견딜 수 없게 느껴진 것은, 작품이 발표된 1985년 당시 한국의 정치 현실이 이 소설의 숨은 맥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전두환의 집권기였다. ‘땡전뉴스’의 시절이기도 했지만, 권력을 장악한 학살 주역들의 얼굴 어디에서도 죄의식과 가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도 당당했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언제 누구로부터 용서를 얻었던 것일까. 아니, 용서를 구하기라도 했을까. 사법적 단죄는 1996년에야 뒤늦게 이루어졌지만, 학살 주역들의 입에서 진실된 참회의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나는 접한 적이 없다. 어쩌면 그들에게 사람살이의 도리는 다른 차원의 세상과 언어를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얼굴을 들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게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정말 수상하다.

그렇긴 해도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온 것은 사실이다. 퇴행의 조짐이 있고 더 악화된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좀더 강하게 주장할 필요도 있다. 192시간여 진행된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에게 작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면, 거기 이만큼의 민주주의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흘린 피와 눈물의 벅찬 확인과 교감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그 과정의 힘겨운 진퇴가 실은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정의의 이름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느꼈기 때문일 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긴 토론의 시간에서 의원들은 결국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고,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민주주의가 결국 사람살이의 문제라는 공명을 낮지만 깊이 불러내지 않았나 싶다.

황석영이 오랜만에 발표한 단편 ‘만각스님’은 광주민주화운동 후 이태가 지난 1983년 담양의 작은 암자 ‘호국사(護國寺)’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누군가는 밀항을 하고, 누군가는 정신병원에서 도청이 진압되는 시간을 되풀이 살고 있다. 소설 집필을 위해 암자를 찾은 화자는 고용 주지로 있는 예순 어름의 스님을 만난다. 마흔에 늦깎이로 출가한 ‘만각’이다. 작가는 툭툭 건너뛰는 듯 어섯어섯 한 인간이 묵묵히 감내해온 참회와 용서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담양은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인근 영광과 함께 대대적인 양민학살이 벌어졌던 지역이다. 만각은 영광 불광산 공비토벌로 훈장까지 받은 전직 경찰이었다. 만각은 호국사에서 현충일이면 올리는 경찰 위령제 다음날, ‘산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조촐한 재(齋)를 지내오고 있었다. 이게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각은 별 법력도 공부도 없는 스님인데, 사형수한테 맡아서 키우게 된 아이를 야단칠 때 보면 그의 온전치 못한 성품도 그대로 드러난다. 곡절 많은 가족사도 그렇지만 그의 삶은 온통 회한투성이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호국’의 절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큰 깨달음도 그의 몫은 아닐 테다. 다만 그는 매일 새벽 예불만은 빼먹는 법이 없다.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새벽 예불을 올리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상을 견디는 일이 쉽고도 가장 어려운 것처럼.” 회환은 이런 견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디어 라이프) ‘언제나’는 무서운 말이다. 만각스님은 알고 있었던 걸까.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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