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3.29 04:40
수정 : 2017.07.05 00:32

[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청바지 찢어 입고 출근해도 괜찮을까?

'찢청'의 귀환, 함부로 과감하게

등록 : 2017.03.29 04:40
수정 : 2017.07.05 00:32

데님 브랜드 '버커루'의 ’무파진(무릎 부위를 도려낸 청바지)’과 ‘허파진(허벅지를 도려낸 청바지)’. ‘청바지를 그냥 놔두지 않고 여기 저기 자르고 찢는 것’이 올 봄 청바지 트렌드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청바지를 잘 소화하는 것만으로 매력 남녀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청바지는 특별한 옷이었다.

입는 순간 ‘당당하고 도전적이며 열려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청바지의 마법은 어느새 끝났다. 익숙하고 흔해진 탓이다.

청바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찢자. 거침없이 찢고 도려내는 것이 올봄 청바지 트렌드다. 과감할수록 빛난다.

찢는다, 함부로 무심하게

돌고 도는 것은 유행의 속성이다. 찢어 입는 청바지, ‘찢청’은 1990년대에도 유행했다. 당시 찢청은 어디서든 담배를 꼬나무는 반항아, 1년 내내 크고 무거운 워커를 벗지 않는 터프한 이들이 즐겨 입을 법한 불온한 옷이었다. 90년대 학번 중엔 찢청 사 입고 집에 들어갔다가 쫓겨나 본 이가 적지 않을 터다.

진화한 찢청이 돌아왔다. 더 과감하지만 덜 어색해졌다. 찢청은 최근 몇 년 간 유행한 ‘생지 진(Raw Jeansㆍ새파랗고 두꺼운 청바지)’을 밀어냈다. 길고 엄혹한 탄핵의 겨울을 지나온 이들이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싶어서인지도.

양복 바지나 등산 점퍼를 찢어 입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청바지는 왜 찢어 입기를 허락받은 것일까.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는 28일 “1960년대 이후 청바지를 저항의 패션으로 입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입어낸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너도 나도 자유롭게 입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새 것이든 낡은 것이든 찢어진 것이든 용인되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우크라이나 패션 디자이너 크세이나 슈나이더의 파격적인 찢청 'DemiDenim' 라인.

‘데미지 진(Damaged Jeans)’ ‘디스트로이드 진(Destroyed Jeans)’ ‘크래쉬 진(Crashed Jeans)’이 모두 ‘찢청’이다. 부러 상처 내고 훼손해서 입는다는 뜻이다. ‘버커루’ ‘게스’ 등 청바지 브랜드는 물론이고, 무난한 실용성을 지향하는 ‘유니클로’도 찢청 라인을 내놨다.

‘내키는 대로 용감하게 찢기’는 2017년 찢청의 코드다. 걷거나 앉을 때 다리가 슬쩍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바지 천을 뭉텅 도려낸다. 손바닥 크기의 구멍을 무릎에 낸 ‘무파진(무릎을 파낸 청바지)’, 허벅지에 낸 ‘허파진’은 보통명사가 됐다. 봄이 온 뒤로는 더 과감해졌다. 허벅지와 무릎 부분을 몽땅 도려내 반바지를 입은 듯 다리를 드러낸다. 성긴 생선 그물을 닮은 ‘피시넷 스타킹’을 찢청 안에 겹쳐 입기도 한다.

뒤도 찢는다. 이른바 ‘반전 뒤태 진’. 인터넷 의류 쇼핑몰 ‘립합’ 관계자는 “앞은 얌전하게 놔두고 뒤를 찢으면 개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며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곳곳을 찢고 구멍 내면 된다”고 말했다. 속옷 노출이 소원이 아니라면, 바지 주머니 바로 밑을 찢는 건 참자. 몇 번 앉았다 일어나면 구멍이 커질 대로 커진다.

청바지를 입는 것만으로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아 섭섭할 때, 아끼던 청바지가 갑자기 후져 보일 때, 세상에서 하나 뿐인 청바지를 입고 싶을 때, 찢청을 사러 가기는 쑥스러울 때, 누군가가 미울 때, 가위와 칼을 들고 찢어보자.

인터넷 의류 쇼핑몰 '립합'의 찢청. 올 봄 찢청의 정체성은 청바지와 반바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

입는다, 자유롭고 우아하게

패션은 언제나 한 끗 차이. 어떻게 찢고 입어야 할까. ‘버커루’의 김남식 디자인실장이 도움말을 보탠 팁이다.

① 매끈하게 찢기는 금물이다. 정성 들여 찢고 오린 티가 나면 촌스럽다. ‘오래도록 아껴 입은 청바지가 세월을 못 이기고 자연스럽게 찢어진 것처럼’ 연출하는 게 핵심이다. 잘 들지 않는 가위나 칼을 사용하자. 자른 부위를 송곳으로 긁거나 사포로 문지르는 것도 요령이다.

② 패션과 맥시멀리즘은 상극이다. 찢청으로 멋을 한껏 냈다면, 웃옷과 신발, 액세서리는 되도록 단정하게 가자. 자칫 ‘넝마 패션’이 될 수 있다. 찢청과 흰 셔츠는 최고의 궁합이다. 찢은 청바지와 청남방, 청재킷을 함께 입는 ‘청청 패션’도 도전해 보자.

③ 초보자는 주머니나 밑단의 표면만 군데군데 해진 ‘스크래치 진’으로 시작하자. 자신감이 생기면 밑단, 무릎, 허벅지 순으로 조금씩 찢어 보자.

발목이 가늘어 보이게 밑단을 찢은 '게스'의 수지진(왼쪽), '유니클로'의 슬림피트 데미지진. 찢청을 입을 땐 단정한 흰색 웃옷으로 분위기를 눌러 주자.

④ 밑단을 잘 찢으면 발목은 가늘고 다리는 길어 보인다. 일자로 싹둑 자르지 말고 삐뚤빼뚤한 단면을 만들어 발목을 다 보여주지 않는 게 포인트다. 싫증난 스키니진은 밑단만 잘 찢어도 새 바지가 된다.

⑤ 통바지보다는 스키니 핏의 찢청을 고르자. ‘터프’보단 ‘섹시’가 올 봄 찢청의 코드다.

⑥ 남성의 찢청은 과유불급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찢자. 다리 털이 고민이라면, 찢은 부위에 다른 천을 덧대 맨 살을 감추는 것도 방법이다.

찢청을 입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기자가 평일 ‘허파진’을 입고 출근하는 실험을 해 봤다. 엄청난 지청구 또는 감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회사 선배 한 명이 “요새 이러고 다니냐?”고 못마땅해 하고, 취재원이 “신문사는 무지 자유로운가 보네요”라고 한 마디 한 게 기자가 받은 관심의 전부였다. 악플보다 무플이 잔인하다더니.

그럼에도 찢청은 평일엔 여전히 금단의 복장이다. 특히 월급쟁이 ‘을’들에게는. 찢청이 비즈니스 캐주얼로 인정 받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찢청은 차라리 일탈과 해방의 패션으로 남아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도엽ㆍ이진우 인턴기자

거리에서 만난 찢청 남녀

왼쪽부터 배우 겸 감독 홍수혁(24)씨, 경희대 의상학과 정하영(20)씨, 바리스타 김승환(23)씨. 세 사람 모두 찢청 마니아다. 홍씨는 "찢청은 저렴한 비용으로 독특하고 인간적인 멋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그가 입은 찢청은 5년 된 것이라고 한다. 정씨는 "찢거나 구멍 낸 부분을 처음 모양 대로 유지하려면 바지를 빨지 말아야 한다"며 "항균제, 세균 억제제 등을 쓴다"고 했다. 김씨는 "지겨워진 청바지를 직접 찢어 입거나 아예 반바지로 만들어 입는다"고 했다. 김도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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