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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미생, 그래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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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미생,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입력
2014.12.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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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직원의 고달픈 현실, 직장의 엄연한 차별과 처세술 등을 그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이 20일 종방됐다. '미생'은 각박한 현실을 알리면서도 희망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미생'의 한 장면. CJ E&M
계약직 직원의 고달픈 현실, 직장의 엄연한 차별과 처세술 등을 그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이 20일 종방됐다. '미생'은 각박한 현실을 알리면서도 희망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미생'의 한 장면. CJ E&M

결국 장그래(임시완)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고졸의 계약직 사원을 단 한번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대기업 원인터내셔널은 끝내 장그래를 버리고 말았다. tvN의 ‘미생’은 20일 마지막회(20회)에서 8.4%(닐슨코리아)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렇게 끝났다. 드라마 ‘미생’은 현실의 높은 벽과, 그 벽을 넘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면서 지난 두 달여간 큰 관심을 모았었다.

● 페이소스의 변주…세대를 껴안다

“저런 상사가 정말 있을까.” 드라마 ‘미생’을 본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품었을 의문이다. 능력은 있으나 스펙이 부족해 내쳐질 위기에 처한 계약직 사원 장그래를 위해 애쓰는 오 차장(이성민)과, 회사를 나간 직장 선후배와 함께 하기 위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 김 대리(김대명)는 현실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혹시 저런 상사가 있을까 하는 의문 겸 기대를 품었을 법하다.

‘미생’의 김원석 PD와 정윤정 작가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지만 1, 2회를 보고 울었다는 분이 많았어요, ‘힘들게 사는 분이 많구나’고 느꼈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습니다.”(김 PD)

“20대에서 60대까지 전 세대가 공감할 보편적 주제로 연민을 선택했습니다. 작품을 쓸 때 그들을 생각하면서 연민이라는 감정을 반영했습니다.”(정 작가)

김 PD와 정 작가가 ‘미생’의 대사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내일 봅시다”를 꼽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드라마에서는 계약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는 장그래와 술 잔을 기울이던 장백기(강하늘), 장백기에게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던 강 대리(오민석) 등이 대화 말미에 “내일 봅시다”라고 짧게 한 마디를 나눈다. 김 PD는 “단순히 내일 보자는 뜻이 아니라 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의미”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마지막 회에서는 김 부장과 오 차장, 김 대리, 장그래가 원인터내셔널을 나와 작은 무역회사에서 다시 의기투합하는데 이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서로가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김 PD와 정 작가는 “힘들게 사는 모습을 그리되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위로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tvN '미생' 스틸컷. CJ E&M 제공
tvN '미생' 스틸컷. CJ E&M 제공

● 드높인 드라마적 가치

드라마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만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최근 방송사들은 일본 만화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을 여럿 내보냈다. KBS ‘내일도 칸타빌레’나 SBS ‘수상한 가정부’ 등이 그런 작품인데 유명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미생’만큼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작품 해석과, 거의 모든 장면을 복사하듯 진열한 무개념 영상 때문이다.

tvN '미생' 스틸컷. CJ E&M 제공
tvN '미생' 스틸컷. CJ E&M 제공

원작이 성공했다고 리메이크작도 성공하리란 법은 없다. 그래서 김 PD와 정 작가는 1년여 동안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대기업 문화의 실체를 공부했다. 정 작가가 갖고 있는 ‘출근일지’는 ‘미생’의 보조작가 2명이 한 무역회사로 출퇴근하며 작성한 결과물이다. 대학 교재 2권 분량이지만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전 9시 출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등 직원들의 출퇴근 동선과, 그들의 전화 통화 등 업무 모습을 단순하지만 생생하게 적었다. 두 보조작가는 무역회사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켜놓고 종일 사무실을 관찰했다. 제작진은 그 일지로 토론에 토론을 거쳐 ‘미생’을 만들었다. 정 작가는 “모바일 메신저로 그 회사 직원들에게 수시로 의견을 묻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미생’에는 지상파 방송사의 그 흔한 ‘막장’ 요소도, 밑도 끝도 없는 러브 라인도 없다. 오죽하면 네티즌들이 “‘미생’은 지상파에서 방영했다면 망했을 드라마”라고 했을까. 정 작가 역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남자들의 두텁고 친밀한 유대와 우정의 감정인 ‘브로맨스’를 통해 휴머니즘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미생’은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며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 스토리에 현실 정서를 반영해야 하며 배우들의 연기가 실감이 나야 성공할 수 있는데 ‘미생’이 그런 작품”이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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