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8.01.02 18:00
수정 : 2018.01.02 23:23

해돋이 ‘뜨끈’ 과메기 ‘든든’… 한 해 살아갈 힘 얻다

포항 호미반도 한 바퀴

등록 : 2018.01.02 18:00
수정 : 2018.01.02 23:23

한반도 동쪽 끝 호미곶에 해가 떠오른다. 호미곶 새천년광장은 2000년부터 새해 해맞이 명소로 자리잡았다. 새해 첫날은 지났지만 일출 여행은 설 무렵까지 이어진다. 포항=최흥수기자

새해 여행은 습관적으로 동해안으로 향한다. 부산 해운대에서 고성 화진포까지 크고 작은 해변마다 일출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포항 호미곶은 2000년 새 천년 해맞이 장소로 이름을 알린 이래 전국적 일출 명소로 자리 잡았다. 호랑이 꼬리처럼 툭 튀어나온 그 꼭지점에서 새해의 희망이 힘차게 퍼져 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포항은 아직 지난해 강진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구룡포의 모든 것, 과메기문화관

외지에서는 호미반도를 한 덩어리로 인식하지만 포항에서는 구룡포읍, 호미곶면, 동해면으로 구분한다. 호미반도 여행은 구룡포에서 시작한다.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와 동의어다. 항구 뒤편 구룡포시장은 지난해 ‘과메기ㆍ물회 음식특화거리’ 조성을 마쳤고,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2016년 ‘과메기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2011년 폐교한 구룡포동부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4층 건물 전시관 내부에는 과메기의 어원과 유래, 생산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과메기는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관목이 ‘관메기’로 변했다가 과메기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식량 역할을 한 먹거리였다는 의미로 ‘과맥(過麥)’이 변한 말이라고도 전한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창 너머로 구룡포해변과 소담스런 해안마을 풍경이 보인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4층 전망대 풍경.

알려진 대로 과메기는 겨우내 잡은 청어를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건조시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상업화하기 전까지 청어 과메기 건조장은 농촌 부엌의 살창이었다. 살창은 재래식 부엌에서 좁은 나무조각으로 살을 대어 맞춘 환기창이자 조명 창이다. 솔가지로 밥을 짓던 시절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였다. 이 살창에 청어를 걸어두면 적당한 외풍으로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살창으로 빠지는 솔 향까지 더해 맛있는 과메기가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과메기는 냉동건조에 훈제까지 더한 요리였던 셈이다. 요즘 과메기는 청어 대신 대부분 꽁치로 만든다. 청어는 살이 두텁고 기름기가 많아 고소하고 맛이 좋지만, 말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 1960년대 이후 어획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문화관 2층 해양체험관에서는 바닷물과 민물을 담은 대형 수족관 2개를 갖추고 있다. 민물에는 울진에서 이송한 송어, 버들치, 붕어 등이 헤엄치고, 바닷물 수족관에는 불가사리와 돌가자미 치어를 풀어놓았다. 물고기를 직접 만져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시설이다.

구룡포공원의 조형물, 구룡포는 10마리의 용 중에서 1마리가 떨어져 9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4층은 카페와 전망대로 꾸몄다. 전망대 벽면에는 ‘어화만대(漁花滿臺)’라는 글귀를 새겼다. 물고기를 모으는 집어등이 밤마다 꽃처럼 만발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실제 문화관 안에 전시한 옛 구룡포항 사진을 보면 밤새 잡아 온 물고기로 어판장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구룡포 앞바다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어구를 버려야 무사히 항구로 돌아올 정도였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돈다. 문화관이 위치한 곳은 구룡포에서도 높은 지대여서 전망이 뛰어나다. 오른편으로는 푸근한 항구의 모습이 들어오고, 수평선을 따라 왼편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들쭉날쭉한 해안선 가운데 구룡포해변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지우고 싶은, 그러나 되새겨야 할 일제의 흔적

과메기문화관 아랫마을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전북 군산이 일제의 미곡 수탈 전진기지였다면, 구룡포는 대표적 어업 수탈 현장이었다. 되도록이면 지우고 싶은 역사지만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에는 뿌리가 깊다. ‘일본에 의해 착취되었던 우리 경제와 생활문화를 기억하는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했다는 안내문처럼 일본인 가옥거리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속내가 뒤섞여 있다. 일본인의 조선 출어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 체결로 본격화했다. 구룡포에는 1906년 가가와현 어업단 80여척이 고등어떼를 따라오면서 일본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932년에는 그 숫자가 287가구 1,161명에 이르렀다.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될 당시 구룡포항 주변에는 조선인 민가가 겨우 3채밖에 없었다니, 그들로서는 황금어장을 거저 손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의 커피숍.

일본인 가옥거리 입구. 1932년에는 거주 일본인이 1,161명에 달했다.

시멘트를 발라 알아볼 수 없게 된 야스브로 공덕비.

구룡포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양편의 돌기둥에도 애초에는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구룡포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일본인으로 도가와 야스브로와 하시모토 젠기치 두 사람이 꼽힌다. 일본인 가옥거리 뒤편 구룡포공원에는 글자를 알아 볼 수 없는 거대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야스브로 송덕비다. 구룡포에 방파제를 축조하고 도로를 개설한 공로로 일본인들이 규화목을 가져와 세운 송덕비인데, 해방 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해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게 했다.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용왕당을 지었고, 그 앞에는 신사의 초석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구룡포 주민들의 일제에 대한 분풀이는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남아 있다. 계단 양편을 장식한 돌기둥에는 애초 신사를 세우는데 공헌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방 후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돌려 세우고 충혼각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탠 주민들의 이름으로 대신했다.

반면 젠기치 가옥은 비교적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2층 목조건물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2011년엔 이 건물을 중심으로 28채의 가옥을 정비하고 일본인 가옥거리를 조성했다. 커피숍과 추억의 상회, 일본 차, 일본의상 대여점 등이 입주해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호미반도 속살 보려면 큰 길보다 해안도로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왕복 4차선 도로로 뻥 뚫려 차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큰길 대신 조금 불편하더라도 해안마을을 연결한 도로로 이동하면 호미반도의 아기자기한 속살을 볼 수 있다.

구룡포해변과 삼정마을 사이 주상절리.

육각 기둥이 뚜렷한 것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분포한다.

먼저 구룡포항에서 한 굽이 돌면 바로 구룡포해변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해 한적한 겨울 바다의 정취를 즐기기 딱 좋은 곳이다. 해변 옆 언덕을 오르면 울퉁불퉁하고 희끗희끗한 갯바위가 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구룡포 주상절리’인데, 물이 빠지면 아래로 내려가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육각형을 비롯한 다면체 돌기둥으로 형성된 큰 바위덩어리가 있는가 하면, 언덕에는 화산 폭발과 용암 분출의 흔적을 품은 돌기둥이 박혀 있다. 오랜 시간 파도에 쓸려 모서리가 닳고 색이 바랜 주상절리 바위 위를 걸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의 특권이다.

주상절리 옆 삼정마을에선 과메기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룡포 해안 어느 곳에서나 과메기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는 건 착각이다. 차량 오염물질 때문에 도로변에는 과메기를 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정마을은 도로에서 비켜나 있어 그나마 바닷가 노천 덕장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은 속을 갈라 대나무 살에 걸쳐 놓았는데, 더러는 짚으로 꽁치를 통째 엮은 모습도 볼 수 있다.

구룡포 삼정마을에서 꽁치를 통째로 말리는 모습. 맛은 통째 말린 것이 낫다고 하지만 초보자는 손질이 된 과메기를 사는 것이 현명하다.

대부분 과메기는 내장을 손질해 대나무에 걸어 말린다.

차량에서 뿜는 오염물질 때문에 도로변에는 볼 수 없고 해안마을로 들어가야 보는 풍경이다.

구룡포가 과메기로 유명해진 것은 호미반도의 지형적 특성 덕택이다. 구룡포에서는 바닷바람이 산에서도 불어온다. 겨울철 영일만의 습기를 머금은 북서풍은 호미반도의 산을 넘으면서 건조하고 차가워진다. 이 산바람이 과메기를 꼬들꼬들하게 말려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이다. 이때 바람이 너무 세면 꽁치가 겉말라 비리고, 한쪽 방향에서만 불면 골고루 마르지 않게 되는데 호미반도 일원은 270도 방향에서 소금기를 머금은 해풍을 받을 수 있어 꽁치 건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미곶을 한반도 동쪽 끝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동쪽 땅끝은 구룡포읍 석병리다. 마을을 끼고 있는 해안선이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암벽으로 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 병풍바위 끝자락에 동쪽 땅끝마을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개인 어장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맘대로 드나들 수는 없다. 꼭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라면 어장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호미곶 일출, 다시 희망으로

석병리를 벗어나면 바로 호미곶면이다. 호미곶면은 그전까지 대보면이었다가 2010년 이름을 바꿨다. 한반도의 균형을 잡는 호랑이 꼬리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2000년부터 해돋이 명소로 자리 잡은 새천년광장엔 ‘상생의 손’이 상징물이다. 흔히 일출 장면과 함께 잡히는 바다 위의 오른손만 기억하지만, 광장에도 같은 크기의 왼손이 바다를 향해 마주보고 있다.

동이 트기 전 붉은 하늘과 검푸른 바다. 기대감으로 더욱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수평선 끝으로 말갛게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상생의 손에 잡힌 일출 모습.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 오르는 듯한 상생의 손과 호미곶 일출.

새해 첫날은 지났지만 일출 여행은 설날 무렵까지 이어진다. 나만의 새해 소망을 담아내기에는 왁자지껄한 첫날보다 오히려 낫다. 해맞이는 보통 해가 뜨기 30분 전부터 시작한다. 일출의 순간보다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더 두근거린다. 찬바람 속에서 발 동동 거리며 희망, 새 출발의 기대가 커진다. 일출은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과정이다. 여명 속에서 모호하고 아슴푸레하던 주변 풍광이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점점 명확해진다. 검붉은 태양이 노란 빛을 잃을 무렵이면 긴 시간 추위를 견딘 인파도 햇살처럼 흩어지지만, 가슴 한 편에는 또렷한 희망 하나씩을 품게 된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내일을 기대하며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광장을 비추면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광장 초입의 새천년기념관에는 2층 바다화석박물관이 볼 거리다. 삼엽충, 암모나이트, 스트로마톨라이트 등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화석을 전시한 공간이다. 강해중 관장이 43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한 2,000점의 화석 진품을 볼 수 있어, 지질과 생물의 진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공간이다. 사실 전공 학생들과 전문가들이 더 높게 가치를 쳐주는 곳이라고 한다.

새천년기념관 안에 있는 바다화석박물관 전시물.

국립등대박물관 앞마당에 전시된 오동도 등대 등롱.

국립등대박물관 야외 전시관의 항로표지시설.

높이 26m 호미곶등대의 위용.

새천년광장 옆에는 호미곶등대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으로 기술 발달로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시설과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1952년 오동도 등대에 사용했던 등롱(燈籠)을 비롯해 2006년까지 사용했던 호미곶등대 등롱과 다양한 해상안전표시시설을 야외에 전시해 놓았다. 등대관 내부는 전국의 주요 등대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꾸몄고, 외로움과 싸우는 등대원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도 흥미를 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전시물의 일부처럼 느껴졌던 26m 높이의 하얀 거탑, 호미곶등대도 달리 보인다.

포항=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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