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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최규하(8월 16일)

입력
2017.08.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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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대통령 최규하가 1980년 8월 16일 사임했다. 자료사진
제10대 대통령 최규하가 1980년 8월 16일 사임했다. 자료사진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가 재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 16일 사임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있던 46년 미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된 이래 주로 외무관료로 일했고,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79년 10ㆍ26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가 그 해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으로 대통령이 됐다.

1919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난 최규하 전 대통령은 경성고보(경기고 전신)와 일본 도쿄 고등사범(영문)을 거쳐 만주 대동학원에서 정치행정학을 익혀 일제 괴뢰정부인 만주국 관료로 일했다. 해방 후 서울대 교수가 됐고, 46년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고, 그의 영어 회화능력은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든 값진 재능이었다.

관료로서 그의 역량이 어떠했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관운은 눈부셨다. 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이 됐고, 59년 40세에 외무차관이 됐다. 외교관 생활을 거쳐 67년 장관이 됐고,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을 거쳐 75년 국무총리가 됐다. 독재 권력 하의 관료로서 정치적 야심 없는 무난함이 큰 장점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가 헌법적 최고권좌에 머문 79년 10월~80년 8월은 말 그대로 격동기였다. 독재자가 죽고 새로운 쿠데타 권력이 집권하는 과정의 주요 사건들, 예컨대 12ㆍ12 쿠데타와 5ㆍ17 내란, 5ㆍ18 광주 유혈진압 등의 주체는 물론 전두환 신군부였지만, 법적 최고권력자인 그가 묵인ㆍ동조하거나 재가했을 것이다. 앞서 그는 한일회담과 베트남 참전 등 대일ㆍ대미 외교의 주요 사건의 주체이기도 했다.

그는 관료로서 지시를 받아 행하는 것을 직무의 전부라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로서 그는 자신이 누린 특권적 경험에 대한 증언과 기록의 직분은 철저히 외면했다. 88년 5공화국 국회청문회 출석ㆍ서면 증언을 거부했고, 95년 전두환ㆍ노태우 내란죄 조사 검찰 서면조사에도 불응했다. 96년 구인장을 받고 법정에 서서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고, 알려진 바, 끝내 회고록 형식의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불운했지만, 재임 중에도 퇴임 후에도 도의적 책무를 다하지도 않았다. 그는 2006년 10월, 87세로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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