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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딘가 쿵... 난국에 대처하는 법

입력
2017.06.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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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더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순정한 비명을 외친다. “도와주세요!” 푸른숲주니어 제공
마침내 더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순정한 비명을 외친다. “도와주세요!” 푸른숲주니어 제공

거북아, 뭐 하니?

최덕규 글, 그림

푸른숲주니어 발행 ·40쪽·1만1,000원

살다 보면 어딘가에 쿵, 부딪칠 때가 있다. 아프다. 찔끔, 눈물이 나게 아프다. 무엇보다 민망하다. 붉어진 얼굴로, 상처를 들여다볼 새 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목격자가 있는 경우의 난처함도 만만찮지만, 가장 불행하기로는 목격자가 친절을 베푸느라 다가오는 경우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째서 친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운한 상황을 감추기에 급급해지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쓰며 딴전을 피우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좋았던 일이 없었다는 경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거짓 행동 또는 거짓말을 일컬어 ‘혼란한 마음이 일으키는 순간적인 거짓’이며, 이에는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허영심이 일으키는 거짓’이 섞여있다고 말한다.

어떤 거북이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쿵, 바위에 부딪친다. 최덕규의 그림책 ‘거북아, 뭐 하니?’의 첫 장면이다. 그림책을 제대로 즐기는 독자라면 앞 면지의 그림으로 유추해 거북이가 가파른 언덕에서 몇 바퀴나 굴렀다는 전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껏 가속도가 붙은 채 굴러 떨어지고 마침내 부딪쳐 멈춘 자리는 하필 제 덩치만한 바위이다. 부딪쳐도 아주 호되게 부딪쳤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몸이 뒤집혔다는 사실, 거북이는 여느 때 자기를 든든히 보호하던 등딱지가 자기를 일으킬 수 없게 만든 난국에 처했다.

스탬프 판화 기법으로 연출된 숲속 공간을 배경으로 거북이 하나가 뒤집힌 채 낑낑거리고 버둥대는 모습이 줄곧 반복되는 이 그림책이, 그러나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고정된 무대에 참새와 토끼와 멧돼지, 원숭이와 악어와 두더지가 각각 등장하고 퇴장하는 연극적 상황이 흥미진진할뿐더러 거짓과 진실 사이를 줄타기 하는 우리 삶의 여러 국면을 떠올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무대 한쪽에 붙박힌 존재들이 고도(Godot)를 기다리던 그 부조리극을 떠올리게도 한다. 거북이는 자신의 심상찮은 상황을 본 누군가 ‘뭐 하니?’라고 물어올 때마다 엉뚱한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심술을 부린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언덕을 굴렀고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에 몸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이 급해 걸음을 서둘렀던 실수와 뒤집힌 몸을 스스로 힘으로는 바로 일으킬 수 없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그러저러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될 일을, 잔꾀를 부려 도움의 손길을 쫓는다. 마침내 더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더도 덜도 없이 순정한 비명을 외친다. “도와주세요!”

이른바 탈 진실의 시대, 끊임없이 계속되는 청문회 정국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저지르는 비리와 오류와 패륜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무엇으로, 어떻게, 자기 정의를 갖추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림책은 난국을 벗어난 거북이가 낯을 붉힌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는 결말로 끝맺고 있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일도 잊고 걸음을 재촉하는 그 낯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있다. 이 단순한 서사는 아이에게는 비슷한 난국에 처했을 때의 해답이 될 것이며, 어른에게는 이미 경험한 국면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소하고 우연한 거짓을 돌이키게 해준다. 때로 하찮게 구는 자신을, 때로 정의롭지 않게 구는 자신을, 허점과 약점과 실수가 줄줄이 드러나던 어느 날의 자신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질 테지만 싱긋 웃을 일이다. 살다 보면 어딘가에 쿵, 하고 부딪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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