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암 소속 비정규직들 근심
선로 유지ㆍ보수를 담당하는 업체
“특수차 운전면허 보유자만 승계”
서울메트로, 고용 대상 9명 한정
2. “밤샘 작업 하면서 버텼는데…”
위험 상황에 대비하는 운영요원
고용 연장 안되면 재취업 나서야
3. 시의회, 자구책 고심하지만…
승계 제외 노동자 면허 취득하게
1년간 촉탁 고용 방안 검토 불구
“고된 업무 외면한 생색용” 비판
“고용불안 없는 환경을 만들기는커녕 외려 시한부 노동자로 전락시키다니요.”
서울메트로의 특수차(모터카 및 철도장비) 운영업무 위탁업체 고암의 청년노동자 박모(25)씨는 요즘 생계 걱정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가 서울메트로의 안전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하면서 박씨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서울메트로는 지난달 안전분야 외주업체 중 고암 소속 노동자들에게만 ‘철도장비 운전면허 보유자에 한해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면허 없이도 3년 동안 일해 온 그는 고용 연장이 안될 경우 9월이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박씨는 13일 “구의역 김군의 죽음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면서도 내심 서울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혁신 정책을 펼칠 줄 알았는데 섣부른 기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 특성화고 출신들이 말하는 취업의 비애)
서울시가 서울메트로 안전분야 외주업체의 직영화를 추진하면서 고용승계 조건에 차등을 둬 일부 노동자들이 실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고용불안 없는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암은 은성PSD(스크린도어), 프로종합관리(전동차 경정비)와 함께 서울메트로의 안전분야 주요외주업체다. 고암 소속 근로자들은 선로를 유지ㆍ보수하는 특수차량 운전자와 차량 바깥에서 화재를 감시ㆍ진압하는 운영요원이 한 조를 이뤄 작업한다. 선로를 매끄럽게 하는 특수차의 작업 특성상 불꽃이 많이 튀어 언제든 대형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산다.
하지만 서울메트로 이사회가 지난달 마련한 ‘조건부 민간위탁 직영전환안’에 따르면 고암의 고용승계 대상은 자체채용자(60세 이하) 19명 중 면허소지자 등 9명으로 한정됐다. 스크린도어나 전동차 정비와 달리 특수차 운전 등은 면허가 필수적이어서 제한을 뒀다는 게 서울시 측 설명이다. 한모(35)씨는 “운영요원은 화재 등 위험상황을 대비하는 업무를 맡아 면허소지 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채용 때부터 6년 넘게 운영요원으로 일해 왔는데 갑자기 무자격자 취급을 받으니 억울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정규직이 될 기회를 잃은 노동자 대부분은 20,30대 청년들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김모(33)씨는 “이틀에 한번씩 밤샘 작업을 하면서도 시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자부심에 꿋꿋이 버텼지만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이 커지자 서울메트로 측은 승계 제외 노동자들을 1년간 촉탁직으로 고용하되, 해당 기간 안에 면허를 취득케 해 정규직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는 정비면허 등을 가진 노동자는 자동적으로 고용이 승계되도록 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24시간 맞교대해야 하는 외주업체 노동자의 고된 업무 일정을 외면한 생색내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모(28)씨는 “2교대 작업을 하면서 다른 동료가 면허취득 교육을 받게 되면 그 공백을 메워야 해 1년 안에 모두가 자격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서울시의회에 진정서를 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다른 외주업체들처럼 노동조합도 설립돼 있지 않아 고용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촉탁 고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은 맞지만 워낙 관심이 큰 사안인데다 모든 업무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 “고졸이 취업한 것만도 감지덕지?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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