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이렇게 지나간다. 떨어지는 잎을 보며 가을도 점점 막바지를 맞고 있음을 느낀다. 높은 산엔 눈도 내렸다지만 도심의 단풍은 지금부터다. 이번 주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서울의 단풍도 붉게 짙어졌다. 대학 캠퍼스는 부담 없이 단풍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멀지 않고 나무가 많으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특히 학교마다 상징적인 장소를 가꾸고 있어 즐거움을 더한다. 먼 단풍 명산으로 떠나기 어려운 당신에게 이번 주말 찾아볼만한 캠퍼스 속 ‘그곳’을 소개한다.
경희대 미대길, 중앙도서관 앞
아름다운 캠퍼스를 논할 때 경희대 서울캠퍼스를 빼놓는 것은 실수다. 상시 콘서트가 열리는 평화의 전당을 비롯한 유럽풍의 건물들은 다른 대학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벚꽃으로 유명한 봄에 비해 가을 풍경의 명성은 조금 덜하다지만, 계절이 달라진다고 캠퍼스가 풍기는 분위기가 어디 갈까.
경희대 학생들은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미대길’을 꼽는다. 미대에 재학 중인 이들도, 다른 단과대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캠퍼스 왼편의 미술대학으로 올라가는 길을 빼놓지 않는다. 붐비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완만하고 널찍하지만, 짧은 길은 아니니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는 중앙도서관 앞을 꼽는다. 봄에는 본관, 여름에는 중앙도서관이 앞이 아름답단다. ‘헐떡고개’라 불리는 정면의 짧은 언덕길부터 중앙도서관 앞 길까지는 작은 숲길이다. 햇빛이 나무 사이로 배어드는 날이라면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감돈다. 이 곳은 주말에 찾는 것이 좋다. 미대길과 달리 수업 사이사이 많은 학생들이 이동하는 길이기 때문. 또한 아직 절반은 초록인 단풍잎이 자주 눈에 띄었다.
국민대 조형관~과학관 길, 성곡동산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위치한 국민대는 캠퍼스 전체가 자연친화적이다.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곤 지상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그린캠퍼스’이다. 크게 번화한 거리는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힐링을 위한 이들에게는 매력이다.
입구에 들어서부터 올라가는 길 양 옆의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깊게 들어가다 보면 조형관이 있는데, 그 곳에서 과학관으로 내려가는 뒷길은 특히 조용하여 산책하기 좋다. 산에 오르지 않아도 숲 속을 걷는 기분이다.
정문에서 올라가다 정면에 보이는 용 두 마리 동상에서,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성곡동산’이라 불리는 작은 공터가 있다. 한적하다. 수년 전만 해도 날씨 좋은 날엔 그 곳에 앉아 배달음식과 음주를 즐기던 학생들이 많았으나 요즘 저학년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고 한다. 낙엽을 밟으며 벤치에 앉아 쉴 수 있고, 지대가 높아 대부분의 캠퍼스는 물론 멀리 북한산의 단풍도 감상할 수 있다.
국민대 캠퍼스의 또 다른 매력은 고양이다. 동아리 ‘국민대 고양이 추어오’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돌보는데 앞장선다. 현재 11마리의 고양이에 ‘금공이’, ‘리코타’, ‘치즈’, ‘샐러드’ 등 각각 이름을 붙이고 구성원들에게 페이스북(같은 이름의 페이지)을 통해 알린다. 많은 학생들이 이들을 알아보고 돌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애묘인들에게는 굳이 한번 찾아볼만한 캠퍼스다.
단, 국민대는 북한산에 가까워 도심 중심부보다 단풍 절정 시기가 빠르니 이번 주말에 찾아볼 것을 권한다.
서울대 버들골, 관악산 산책로
관악산은 사시사철 인기다. 매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버스가 가득 찬다. 그러나 등산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서울대 캠퍼스가 제격이다. 특히 자녀와 뛰어 놀기도 하고 정문이나 자하연, 규장각 등 인기 견학 코스를 함께 구경하기에도 좋다.
캠퍼스 전체가 산 지형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색 바랜 나무와 낙엽을 볼 수 있지만, 나들이를 하기엔 후문에서 가까운 버들골이 좋다. 이 곳의 특징은 무한히 펼쳐진 잔디. 진정 단풍 ‘놀이’를 할 수 있다. 아이들 또는 반려동물이 아무리 뛰어도 잔디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관악02 버스를 타거나 서울대입구역에서 5511버스를 타고 노천강당이나 기숙사삼거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가깝다.
후문까지 들어가기 부담스럽다면 정문 근처의 관악산 산책로 초입도 좋다. 여러 등산로 중 정문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으로 5분여 거리에 있는 등산로 초입은 오르막이 없는 걷기 편한 길이다. 지난달 17일 서울시 선정 ‘아름다운 서울 단풍길 105선’에도 꼽힐 만큼 아름다움과 편의성을 갖추고 있다. 벚나무에 비해 단풍나무가 많은 편은 아니나 여러 나무들이 푸른 빛을 빼고 가을 색을 입고 있다. 특히 공기가 맑아 기분전환을 위해 잠시 산책할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단, 나무가 울창해 햇빛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사진 남기기 좋은 장소는 아니다.
서울대는 춥다. 번화가와 떨어진 산에 위치하고 있어 체감온도가 낮다. 그래서 벚꽃은 늦지만 단풍은 빠르다. 더 늦지 않은 시기, 햇살이 따스한 이른 오후 시간에 두터운 옷을 입고 관악의 가을을 만끽하자.
성균관대 명륜당
노란 은행잎으로 덮인 전통 건축물의 아름다움. 다른 캠퍼스에서는 보기 힘든 성균관대 인문사회캠퍼스만의 매력이다. 앞다퉈 새 건물을 올리기 바쁜 요즘의 대학들이지만, 성균관대 한편엔 17세기에 재건축된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11월이 되면 구석구석 은행 냄새가 퍼질 만큼 캠퍼스가 노란빛으로 덮인다. 그 중 옛 성균관 앞 은행나무가 제일이다. 400년이 넘은 이 한 쌍의 나무는 국내 19종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중 하나이며, 높이 26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09m에 달할 만큼 거대하다. 단, 큰 만큼 다른 나무들에 비해 서서히 물이 든다. 11월 중순은 돼야 샛노란 대형 은행나무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균관은 주중 주말 관계없이 동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성균관대 졸업생 유희원(26)씨는 성균관에 볼거리가 많진 않으나 대학로 근처에 왔을 때 좋은 프로필 사진 한 장 남기기에 좋은 장소라 추천한다. 성균관 근처의 국제관과 이어지는 신구조화가 캠퍼스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또한 평소 그 곳을 걷는 이들은 매년 은행을 밟지 않으려 전쟁을 치른다고 하니 신발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덧붙인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면, 명륜당을 비롯한 성균관은 중고교 수학여행부터 유교문화 단체관람, 결혼식 웨딩사진 촬영까지 온갖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는 점이다. 가을 명륜당의 넘치는 매력 때문이리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은 불편할 수 있다.
이화여대 포도길
‘중국인 관광객이 이대생보다 많은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화여대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아름다운 캠퍼스로 묘사한 바 있다. ECC(Ewha Campus Complex)나 ‘이화동산’ 등에서 찍힌 ‘인생샷’을 온라인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화여대생 최유경(21)씨는 넓은 이화여대 캠퍼스 중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 ‘포도길’을 꼽았다. 포스코관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길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쉼터가 되는 숲길이란다. 캠퍼스 내의 작은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을 주며, 곳곳에 있는 벤치에서 김밥을 먹기도 한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다람쥐나 청설모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화여대에도 여러 유명한 간식들이 있지만, 학생들은 포도길에서 가까운 포스코관의 이화사랑 참치김밥과 체리에이드를 즐긴다. 김밥은 2,700원의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양의 참치가 들어있고, 마요네즈를 직접 뿌려 먹는 방식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매력적이다.
건국대 일감호
“ㅇㅇ호수 걷자고 꼬셔.” 밴드 버스커버스커 ‘꽃송이가’의 가사. 캠퍼스 안의 호수는 여러 감정을 싹트게 한다. 또한 캠퍼스의 상징이 될 만큼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과 함께라면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주로 ‘건대호수’라 불리는 일감호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건국대 캠퍼스로 향하게 만든다.
일감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은 ‘청심대’. 벤치에 앉으면 그 넓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일감호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리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평일에도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오리를 보며 신기해하는 어린이부터 한적함을 즐기는 노인까지 모두에게 매력적이다.
가을에는 호수를 둘러싸고 은행나무들이 물든다. 특히 호수 주변의 낙엽과 호수에 비치는 가로수,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이 조화로워 맑은 날에는 카메라를 든 출사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은행잎의 색은 눈에 띄지 않지만 일감호에 투영되는 홍예교의 불빛이 낭만을 더한다.
한 졸업생은 호수 근처 벤치도 좋지만 날이 추운 늦가을에는 기숙사 근처 할리스 커피 일감호점을 추천한다. 4층까지 있어 따뜻한 음료와 함께 호수와 가로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호수 주변의 은행나무가 아쉽다고 느껴진다면, 사범대학 앞에 가면 단풍과 은행이 많아 아쉬움을 채울 수 있다고 한다.
건국대는 도심과 가까워 아직 가을색을 절정으로 뽐내고 있지는 않다. 또한 비교적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별다른 준비 없이 걷기 좋다.
대학 캠퍼스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만큼 재학생 외에도 여러 목적의 방문객들이 이용한다. 캠퍼스를 즐기러 온 방문객과 학업에 열중하는 재학생들이 불편함과 불쾌감을 호소하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최근 집단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한 대학생들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를 더할 것이다.
민준호 인턴기자(서울대 사회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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