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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트럼프와 미국 소프트파워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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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트럼프와 미국 소프트파워의 쇠퇴

입력
2018.02.25 19: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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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는 명백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침식하고 있다. 최근 갤럽이 134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0%만이 트럼프 리더십의 미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이후 거의 20%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중국도 30%를 얻어 미국과 거의 비슷해졌다. 영국의 여론지표인 ‘소프트파워 30’은 미국이 2016년 1위에서 지난해 3위로 미끄러졌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옹호자들은 소프트파워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은 국무부 예산과 미국 국제개발기구(USAID)의 예산을 30% 삭감하면서 ‘하드파워’예산을 선언했다. ‘미국 우선주의’ 지지자들에게 전세계 다른 나라들의 생각은 부차적이다. 그들이 옳을까?

소프트파워는 강압이나 돈보다 매력에 의존한다. 사람들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끌어들이는 것이다.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자녀들에게 올바른 윤리적 가치의 모델이 되어 주는 게 자녀들의 엉덩이를 때리거나 용돈을 주거나 자동차 열쇠를 빼앗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현명한 부모라면 안다.

마찬가지로 정치 지도자들은 의제를 설정하고 토론의 틀을 결정하는 데서 오는 힘을 오랫동안 인식해 왔다. 내가 하기를 원하는 것을 당신도 원하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가 따르기 원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다면 굳이 채찍과 당근을 쓸 필요가 없다. 매력이 하드파워에 덧붙여지면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는 주로 세 가지 원천에서 나온다. 문화,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정치적 가치, 그리고 정책이다. 정부가 국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예를 들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국제기구에서 어떻게 처신하는가(다른 나라와 소통하는 등의 다자주의), 그리고 어떤 대외정책을 펴느냐(개발과 인권을 옹호하는 것)가 하나의 전범으로써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모든 영역에서 트럼프는 매력적인 미국의 정치에 역행하고 있다.

운 좋게도 미국은 트럼프나 그 정부 이상이다. 하드파워 자산(군사력 같은)과 달리 많은 소프트파워의 원천은 정부와는 별개이고, 정부의 목적에 부분적으로만 부응할 뿐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정부는 문화를 통제할 수 없다. 공식적인 문화정책이 없다는 것은 정말 그 자체로 매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독립적인 여성들과 언론의 자유를 보여주는 ‘더 포스트’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미국 재단들의 자애로운 활동이나 미국 대학들의 탐구의 자유가 가져오는 혜택도 마찬가지다.

기업이나 대학, 재단, 교회, 그리고 다른 비정부기구들이 공식적인 대외정책 목표를 강화하거나 혹은 그것과 불화를 빚을 수 있는 자신들의 소프트파워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소프트파워의 이 모든 사적 원천은 지구촌 정보화 시대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들의 행동과 정책이 소프트파워를 저해하거나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창조하고 강화한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해야 하는 이유들이다.

국내 혹은 대외 정책이 위선적이거나 거만하고 자국 이익에만 편협하게 매몰될 경우 소프트파워를 저해한다. 예를 들어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행해진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매력에 대한 급격한 추락은 일반적인 미국이 아닌 부시 행정부와 그 정책에 대한 반응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을 인기 없게 만든 첫 번째 정부 정책이 아니다. 1970년대 전세계 많은 사람들은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전쟁에 반대했고, 미국의 국제적 위치는 그 정책의 비인기도를 반영했다. 정책이 바뀌고, 전쟁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자 미국은 잃어버린 소프트파워의 상당부분을 회복했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비록 중동에서는 덜하지만) 소프트파워의 많은 부분을 되찾아가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여전히 미국 소프트파워의 흥망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자신의 국익 차원에서 협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논점은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 협력은 정도의 문제이고, 그 정도는 매력이나 혐오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 영향력은 비국가 행위자들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어 테러단체의 신병모집을 부추길 수도, 저해할 수도 있다. 정보화 시대에서 성공은 누구의 군대가 이기느냐 뿐만 아니라 누구의 스토리가 먹히느냐에도 좌우된다.

미국 소프트파워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는 개방적인 민주적 과정이다. 잘못된 정책이 매력을 저하할 때조차 그 잘못을 비판하고 교정하는 미국의 능력이 더 깊은 수준에서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외국에서 시위대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행진을 할 때 그들은 미국 인권운동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We Shall Overcome”을 부른다.

미국도 분명 극복해낼 것이다.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트럼프 이후 미국이 소프트파워를 회복하리라는 희망은 도처에 있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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