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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광장 민주주의와 시민의 탄생

입력
2016.1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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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난 대부분 사람 특히 젊은이들은 광장에서의 민주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정치적 존재임을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정치가 무관심, 어쩌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이제 자신이 분노할 수 있고 더 나은 사회를 원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몇몇은 시민혁명에서 사회권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까지 내보인다. 민심을 동원하여 ‘탄핵’을 가결함으로써 주권자로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다수가 더 많은 평등, 사회보장 확대를 원한다면 보편적 사회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국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주의 기반 위에서 시장을 제어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한 것이 복지국가라면 우리는 이제 첫 단추를 만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더해 광장의 민주주의는 ‘우애(fraternity)’의 경험을 선사하였다. 집회는 모두가 타인으로 존재하던 곳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모금에 응하고, 낯선 누군가에게 양초와 간식거리를 건네며,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호의들을 베푸는 광경은 드물지 않았다. 분노를 모아 같은 바람을 외치는 것이 동료 시민으로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우애의 감정을 느끼는 시작점이 된 듯하다. 광장의 경험은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는 공통의 감정 기반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수평적인 연결의 감각이다. 정치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나이, 계층, 직업, 출신 지역과 무관한 평등한 시민으로 만났고, 그렇기에 이러한 연결의 감각과 특별한 에너지가 발생할 수 있었다.

5월 광주, 6월 민주항쟁에 이어 2016년 광장 민주주의는 대중의 마음에 소중한 정서적 기억, 정치적 기억을 각인시켰다. 누구든 동굴 바깥 풍경을 본 후에도 다시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번 새겨진 기억은 갈망의 원천이 된다.

위증 지시, 위조서명, 출석 거부, 조사 거부에 관한 뉴스들에 답답함이 올라온다. 진실은 간결할 텐데…. 거짓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다른 시민혁명의 역사가 보여주는, 혁명에 뒤따르는 반혁명에 대한 우려도 한몫 한다. 불황의 그림자가 민주주의를 침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를 가중시킨다. 절망하게 하는 구습은 끈질기다. 그래서 더욱 지금까지의 성취와 목표를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은가. 답을 찾는 데에는 우리 사회가 지금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지금 이 병폐를 지탱하는 뿌리가 얼마나 거대한가를 알기에 처음부터 쉽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다. 필요한 것은 대통령 하나 내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단면이 되어 보여준 오래된 부조리를 청산해내는 일이다.

시대에 단층을 만드는 것은 청와대 권력을 바꾸는 것, 누군가의 주장처럼 헌법을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 작동방식 전체, 조직운영과 관계 맺기 방식을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살아가는 곳의 전근대성과 병폐를 속속들이 드러내고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몇몇 엘리트의 헌신으로 될 일이 아니다. 평범한 구성원이 주체가 될 때 가능하다. 각자가 고립된, 순응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원할 수 있고, 함께 하는 정치적 존재임을 자각할 때 생활과 정치의 인위적 경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다.

서로 연결된 평등한 시민, 분노하는 시민으로 존재하게 만든 광장 민주주의의 기억은 학교와 일터, 그리고 국가를 바꿔내는 힘이 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합리성이 새로운 사회의 작동 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갈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감당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외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더 끈질기게 가 볼 일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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