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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운명과 의지, 무엇이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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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운명과 의지, 무엇이 강한가

입력
2018.07.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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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무크. 민음사 제공
오르한 파무크. 민음사 제공

이름이 존재증명인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66). 그 이름이 모두에게 ‘재미’까지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파무크의 열 번째 소설인 ‘빨강 머리 여인’은 다르다. 우선 빠르다. 파무크 특유의 ‘구구절절함’에 호흡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또한 팽팽하다. 추리소설 구조여서, 결말을 향해 눈이 문장들을 앞질러 간다. 터키에선 2016년 출간되자마자 40만부가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역사 속 아버지와 아들은 대개 불화했다.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보지 못해 죽였다. 이란 민족서사시 ‘왕서’에선 아버지가 전장에서 만난 아들이 아들인 줄 모르고 죽였다. 동양과 서양의 부자(父子) 살해 신화가 소설의 핵심 모티프다. 17세 소년인 주인공 젬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사라진다. 이스탄불의 우물 파는 장인 우스타의 조수가 된 젬은 우스타를 아버지처럼 사랑하고 아버지처럼 미워한다. 젬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 또래의 빨강머리 유부녀 귈리한에게 운명처럼 빠진다. 귈리한은 어쩐지 젬을 알아 본다. 비극의 시작 아니면 필연이다. 귈리한과 동침한 다음 날, 젬의 실수로 우스타가 우물에 갇힌다. 젬은 도망친다. 우스타는 죽었을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젬은 착실히 살아 간다. 젬은 아버지를, 낳지 못하는 아들을 갈망하며 산다. 부유한 중년이 된 그에게 아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귈리한과의 그 밤에 잉태된 아들이다. 아버지까지 돌아오고 나면, 오이디푸스 혹은 왕서의 비극을 닮은 결말로 질주한다. 소설을 맺는 건 귈리한의 독백. 파무크가 치밀하게 흩어 놓은 퍼즐이 완성되고 나면 다시 소설의 첫 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무크 지음∙이난아 옮김

민음사 발행∙376쪽∙1만4,000원

파무크는 겹겹의 질문을 던지는데, 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운명과 의지 중, 강한 것은 무엇인가. 삶은 전설을 반복하는가. 오이디푸스는 예언이 헛되다는 걸 증명하려고 몸부림친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다. 오이디푸스가 ‘그냥’ 살았다면, 그런 재앙은 닥치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으려 파무크는 젬에게 우스타를 죽음 가까이로 내모는 시련을 준다. “아버지는 세상의 시작이고 중심이지. (…) 나는 그런 아버지가 없었어.”(젬) 파무크가 보기에, 아들에게 부재(不在) 하는 건 아버지의 죄악이고,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살해당하는 죄목 역시 부재다. 그렇다면, 젬이 어떤 운명을 맞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귈리한은 오이디푸스와 동침하는 어머니 이오카스테이자, 세상의 모든 여인이다. 연극배우인 귈리한은 소설에서 두 번의 부자 살해를 목격하고 통곡한다. 한 번은 연극에서, 한 번은 현실에서. “세상의 질서는 어머니들의 울음 위에 세워졌어요.”(귈리한) 아버지와 아들이 죽이고 죽이는 세계를 정화하는 건 여성들이라는 게 파무크의 메시지다. 귈리한의 빨강 머리는 이탈리아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오이디푸스 왕’(1967)에서 빨강 머리의 이오카스테로 나온 안나 마그나니의 오마쥬다. 파무크는 그걸 젬의 대사로 일러 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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